[사설] 집값 잡겠다고 대출금리 인상…정부·은행 '묵시적 담합'이다

입력 2021-03-23 17:52
수정 2021-03-24 00:11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축소 방침에 따라 은행들이 속속 대출금리를 올리면서 은행에 빚을 진 가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신한은행 농협은행에 이어 우리은행이 내일부터 일부 전세자금대출의 우대금리를 연 0.4%포인트에서 0.2%포인트로 낮춘다. 다른 은행들도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이에 앞서 은행들은 정부의 부동산 수요 억제책에 호응해 작년 말부터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의 우대금리를 대거 줄이거나 없앴다.

최근 단기 은행채 금리가 상승세여서 이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신용대출 금리는 오를 여건이기는 하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은 기준이 되는 코픽스 금리가 작년 12월 0.9%에서 2월 0.83%로 되레 하락했다. 그냥 놔뒀다면 대출금리가 오르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금융당국이 개입하고 은행이 맞장구치면서 차주(借主)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당국은 은행 대출담당자들을 수시로 불러 총량을 관리하는 등 관치(官治)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계대출 모니터링을 안 할 수 없고, 금리 인상은 압박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정부가 25번 헛발 대책으로 집값 급등과 ‘영끌 대출’을 자초한 마당에 뻔뻔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고, 은행 목줄을 쥐었으면서 “흐름만 봤을 뿐”이란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금융당국 핑계를 대며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은행들도 “고객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에다 코로나까지 겹쳐 은행들은 가계대출 외에 딱히 수익을 낼 만한 분야를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 결과 대출금리는 ‘덜컥’ 인상하면서 예금금리는 ‘찔끔’ 올려 예대마진이 작년 10월 1.78%포인트에서 올 1월 1.85%포인트로 커졌다. 당국이 압박을 하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대출금리부터 올리는 은행들은 ‘테크핀 혁명’ 시대에 여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 예대마진 장사에 몰두하고 있는 꼴이다.

최근 미국 국채 금리 상승 등의 여파로 국내에서도 시장금리가 오름세를 타면서 가계대출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계의 총이자부담이 11조8000억원씩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14조3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값 잡기에 혈안이 돼 서민·중산층 대출이자 부담은 안중에도 없고, 은행은 수익 올리기에 급급해 관치에 철저히 순응하는 판이다. 이게 정부와 은행의 ‘묵시적 담합’이 아니고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