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둘러싼 혼란과 공포…요원한 코로나 집단면역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3-19 09:30
수정 2021-03-19 09:46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둘러싼 혼선이 계속 되고 있다. 유럽 19개국을 포함, 20여개 국가가 AZ 백신이 혈전을 생성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접종을 중단한 가운데 국내에서는 국내 방역 당국은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해외 눈치보기에 들어가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AZ 백신 접종 여부는 처음부터 오락가락을 반복했다. 백신 확보가 늦어지는 바람에 지난달 26일 세계에서 105번째로 늑장 접종을 시작한데다 다양한 백신을 구입하지 못한 사정으로 인해 AZ 백신부터 맞게됐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AZ백신을 요양시설 요양병원의 입소·입원자 및 종사자 130만 명에게 우선 접종할 계획이었다가 이중 65세 이상 고령자 접종을 돌연 취소했다. AZ 백신의 고령층에 대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AZ백신은 유럽의약품청(EMA)과 영국 등 50개 국가에서 조건부 허가 또는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지만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65세 미만에 대해서만 접종을 권고했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지난달 이 백신을 허가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지난 11일 정부는 AZ 백신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정세균 총리는 "그동안 고령층에 대한 AZ 백신의 효과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해 65세 이상엔 접종을 미뤄왔지만, 최근 고령층에 대한 효능을 충분히 입증할 자료가 영국에서 발표됐고, 독일과 이탈리아 등도 이미 접종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맞기 시작하니 우리도 하겠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혈전 문제가 생기면서 상황은 또 다시 반전됐다. 오스트리아 등에서 AZ 백신을 맞은 뒤 혈전이 생성돼 사망했다는 사례가 보고 되면서 AZ 백신 접종을 중단한 나라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영국 등 유럽에서 약 2000만 명이 AZ 백신을 접종했고, 30여명에게서 혈전증이 발생했다. 이 중 오스트리아·덴마크 사망자 2명은 AZ 백신과의 인과관계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관련성을 의심받고 있다. 특히 관망하던 독일과 프랑스가 접종을 중단하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정부는 며칠 전까지만해도 "국내에선 아직 AZ 백신으로 인해 혈전증과의 관련성이 인정된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예정대로 AZ 백신 접종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AZ 백신을 맞은 뒤 사망한 60대를 부검한 결과 혈전 소견을 보인 사례가 나오면서 또 다시 상황이 꼬이고 있다. 어제는 20대 남성 한 명이 AZ 백신 접종 후 혈전 이상 반응을 보였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박영준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이상반응조사지원팀장은 16일 AZ 접종 중단 가능성에 대해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하루 뒤인 17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국회 답변에서 "AZ 백신을 맞아도 된다"고 답변했다 국민들은 갈수록 더욱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는 와중에 지난밤 사이 유럽의약품청(EMA)이 "AZ 백신과 접종자들의 혈전 생성은 관련이 없다"며 "백신으로 인한 이익이 부작용 위험성보다 크다"고 밝혔다. AZ 백신의 지속 사용을 권고한 것이다. 이에따라 접중을 중단했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AZ 백신 접종이 재개될 전망이라고 한다. EMA의 입장이 나옴에 따라 국내에서도 AZ 백신 접종은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AZ 백신 접종을 둘러싸고 끊임 없는 오락가락이 계속되는 이유는 방역당국이 백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백신 확보에서도 그랬지만 각 백신별 특성과 부작용 등에 대해 권위있는 평가나 실험, 내지는 해석을 할 기관이 국내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나 해외 연구기관의 동향을 기웃거리며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바이오 강국이라며 자화자찬하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국내 전문가 중에는 "한국 등 아시아 사람의 혈전증 발생률이 유럽이나 미국의 10~20% 밖에 안 된다"며 유럽을 바라 보고 우리 상황을 평가할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백신 접종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 관련 대처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간 우리 방역 당국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그다지 경청하지 않았다. 지난해 초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했을 때, 중국발 입국을 막지 않았을 때부터 그랬다. 당시 다수의 감염병 전문가들이 방역의 기본인 '유입 차단'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이를 차일피일 미뤘다.

방역은 전문가의 말을 따라야 하는데 이런저런 정치적 요인을 감안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는 코로나 발생후 집회 시위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대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극복은 이제 백신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게 백신을 확보하고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4월부터, 미국 영국은 6월부터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까지 60여만명이 접종, 전체 인구의 1.2%에 불과하다. 11월까지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했지만 지금과 같은 접종 속도면 언제 집단면역을 달성할 지 가늠하기 어렵다. 백신 확보도 제대로 안된데다 접종 속도까지 느려 앞으로 몇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정부가 백신 접종에서만은 제발 좌고우면 하지말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르길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