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도·태평양 안 떠나는 이유

입력 2021-03-18 17:26
수정 2021-07-21 15:34
인도·태평양지역을 겨냥한 미국의 외교가 점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 등으로 구성된 ‘쿼드(Quad)’는 지난 12일 화상으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코로나19 백신 외교부터 기후변화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협력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도쿄를 방문해 일본 측 관계자들을 만난 뒤 다음달 예정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워싱턴 방문을 준비했다. 이어 오스틴 장관은 인도로 가고 블링컨 장관은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급회담을 한다. 여기서 호주 같은 미국 동맹국에 대한 중국의 무역 압박에 문제를 제기할 전망이다. "中·대만 6년 내 군사적 대결"필립 데이비드슨 인도·태평양지역 미군사령관은 지난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대만과 중국 본토 간의 군사적 대결이 향후 6년 안에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군사 원로인 쉬치량 장군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기존 패권국인 미국과 신흥 강대국인 중국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의미)에 직면해 있으며, 군사비 지출과 대비 태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 베트남, 인도, 남중국해 부근에서 중국의 군사시설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성사진은 쉬 장군의 충고가 이미 실행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도·태평양에 대해 미국이 한 약속의 성격과 깊이를 가늠하는 것은 주변국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의 결단을 수용할지, 아니면 거부할지를 고민하는 나라들로선 생사를 다투는 문제다. 마이클 그린은 2017년 저서 《신의 섭리 이상으로(By more than providence)》에서 인도·태평양이 미국 정책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게 단순 유행이 아님을 보여줬다. 그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오래전부터 미국의 대외정책에 지속적으로 포함돼 있었다는 걸 증명했다.

미국이 1803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주를 사들여 서부 해안선을 조성한 순간부터 안보에 대한 의구심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외교의 골격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842년 존 타일러 대통령이 먼로 독트린(미국과 유럽의 상호 불간섭주의)을 하와이로 확대하자 아시아지역의 균형이 미국의 국내 안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사고가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 사이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인도·태평양은 美 안보의 핵심태평양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크고 오래된 시민사회의 개입 외교정책인 미국 선교운동의 핵심이었다. 선교사들은 복음보다 더 많은 것을 설파했다. 아시아 전역에서 고속 성장하는 기독교인의 존재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성공을 입증한다. 물론 그 모습이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필리핀에서 보여준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적 태도와 식민지 모험은 쓰라린 유산을 남겼다.

그럼에도 아시아태평양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의 번영과 안보에서 중요한 곳이다. 전쟁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균형 있고 안전한 지역 질서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동맹국들도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유구한 역사와 미국의 이해구조에 너무 깊이 뿌리를 두고 있어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떠날 가능성은 작다.

정리=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이 글은 월터 러셀 메드 WSJ 칼럼니스트가 쓴 ‘Why the U.S. Won’t Leave the Indo-Pacific’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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