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휴대폰, 반도체, 조선, 가전제품 등 한국이 수출하는 모든 제품의 ‘틀’을 만드는 금형산업이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북미 수출을 기록했다. 세계 120여 개국에 금형을 수출하는 한국은 독일, 일본, 미국, 중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5대 금형 생산국이다. 수출 규모로는 6년째 세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 금형 수출 52% 급증에이테크솔루션, 나라엠앤디, 재영솔루텍을 비롯한 국내 1500곳 금형업계를 대변하는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금형업계 수출은 3조27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1.7% 증가했다.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이 전체의 98%를 차지하는 금형업계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전체 금형 생산 규모는 전년과 비슷한 9조원대로 추정된다.
미국 수출이 4400억원으로 가장 높은 비중(13.4%)을 차지했다. 그동안은 일본과 중국이 줄곧 수출 비중 1위였다. 미국 수출은 전년 대비 52.2% 급증했다. 1981년 금형조합이 업계 통계를 작성한 이후 40년 만에 최대치다. 북미지역 자동차 생산 거점인 멕시코 수출 역시 전년 대비 42.9% 불어났다.
신용문 금형조합 이사장(신라엔지니어링 대표)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폰과 가전제품 수요가 북미지역에서 늘어난 데다 현대차·기아의 자동차 판매도 나름 선방하면서 금형업계 수출이 덩달아 늘어났다”고 말했다. 테슬라·벤츠에도 K금형 공급금형은 제품의 디자인과 품질, 원가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한국 금형산업의 가장 큰 수요처는 자동차산업이다. 자동차는 보닛, 루프, 트렁크, 범퍼, 그릴 등 부품을 제작하기 위해 2만~3만 개의 금형이 필요하다. 신 이사장은 “자동차는 시트 빼곤 모두 금형으로 제작된다”며 “금형기술이 한 나라 제조 경쟁력의 척도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금형조합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테슬라, 벤츠, 포르쉐, 르노, 도요타, 혼다, 닛산 등이 모두 한국 금형기술로 찍어낸 부품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파나소닉, 엡손, 지멘스, 보쉬 등도 마찬가지다. 금형업계가 국내 기업이 아니라 순수 외국 업체로부터 수주하는 물량 비중은 전체의 50%에 달한다.
신 이사장은 “기계분야 가운데 유일하게 대일 무역 흑자를 보이는 품목이 금형”이라며 “일본은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다”고 했다. 주 52시간제 걸림돌로 등장한국 금형업계의 남은 과제는 기술력 세계 1위인 독일을 따라잡는 것이다. 독일 기계 부품들은 머리카락 두께(약 0.05~0.1㎜)보다 더 작은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함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독일과는 아직 특정 분야에서 기술 격차가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올 들어 50인 이상 기업까지 확대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 탓에 납기 경쟁력이 떨어지고 연장 근무수당을 못 받게 된 인재들이 이탈하는 게 암초로 꼽힌다. 신 이사장은 “경쟁 국가에서 한 달 걸리는 금형 제작을 1주일 만에 하던 한국의 속도 경쟁력에 제동이 걸렸다”고 말했다.
수주 산업인 금형산업 특성상 작년 코로나 사태에 따른 기업별 신제품 출시 지연은 올해 매출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금형조합은 업계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국내외 120여 개 업체가 참여하는 국제 온라인 전시회 ‘인터몰드 코리아 2021’을 16일부터 22일까지 연다. 1981년 세계 최초의 금형 전문 국제전시회로 출발한 이 행사에서는 화상 수출 상담회와 국제 콘퍼런스도 진행될 예정이다.
신라엔지니어링, 삼우코리아, 건우정공 등 금형업체를 비롯해 국내 3대 금형 공작기계 전문기업인 두산공작기계, 현대위아, 화천기계 등이 제품을 선보인다. 헥사곤(스웨덴), 블룸노보테스트·하이덴하인(독일), 미쓰도요(일본) 등 해외 기업도 대거 참가한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