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분쟁 새 국면 맞나…거세지는 美조지아주 반발

입력 2021-03-04 16:23
수정 2021-03-04 18:31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소송이 LG 측의 승소로 일단락됐지만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 공장의 가동 중단에 대해 미국 정치권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거부권을 행사할 지 주목된다.

4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교통부 부장관 지명자인 폴리 트로튼버그는 이날 상원 상무·과학·교통위원회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분쟁에 대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정이 바이든 정부의 녹색 교통 목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 조지아주 공장 가동 중지에 따라 미국 내 배터리 공급량이 축소되면 미국의 전기차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될 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이날 트로튼버그 지명자의 발언은 조지아주가 지역구인 라파엘 워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워녹 의원은 SK가 공장을 건설 중인 조지아주에서 2600명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행정부의 대응을 주문했다.

워녹 의원은 "ITC의 판결이 조지아주 노동자들과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 자동차 정책에 대한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워녹 의원은 과거 공화당의 아성이었던 조지아주에서 승리하며 민주당을 상원 다수당으로 만든 최대 공신이다. 흑인 목사인 워녹 의원은 의료보험 확대, 투표권 보장 등 시민사회 활동에 투신했다가 정계 진출에 나선 인물이다.

앞서 LG는 SK가 전기차 배터리 관련 인력을 빼가고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ITC에 조사를 신청했고, ITC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에 대해 미국 생산과 수입을 10년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조지아 주에 배터리 1·2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19년 1분기에 착공한 1공장은 내년 1분기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어 2공장은 2023년부터 양산에 돌입한다. 이 공장 건설에 투입한 금액만 3조원에 달한다.



워녹 의원 뿐 아니라 조지아주의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이번 판정으로 조지아 주의 SK배터리 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SK이노베이션의 2600개 청정에너지 일자리와 혁신적인 제조업에 대한 상당한 투자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재검토하라고 주문한 점도 관심을 모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전기차배터리·반도체·희토류·의약품 등 4개 산업분야에 대한 현지 공급망을 검토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과 중국에 비해 크게 뒤쳐진 미국 내 배터리 생산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거부권을 꺼내들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불공정 무역관행 개선을 강조해 온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특허 침해가 아닌 영업비밀 침해 건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선례가 없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합의금을 둘러싼 양사 간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정치권 움직임이 변수로 등장했다"며 "합의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날 다시 한번 양사의 합의를 촉구했다. 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양사가 미국 백악관을 상대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부분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격에도 맞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정 총리는 이어 "이 문제는 양사가 잘 의논해서 신속하게 결론을 내는 것이 양사의 이익에도 부합하고, 양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국민들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길"이라며 "지금도 양사가 대승적으로 합의를 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힘을 합치는 노력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