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지난 17일 국회에서 포장 사전검열과 표시제에 대해 "독일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며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초유의 포장재 사전검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두고 한 발언이다.
이는 사실일까. 한국경제신문이 법률 전문가들과 경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독일 관련법을 들여다 본 결과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파악됐다. 포장재질을 규제하는 법안이 독일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경제계가 우려하고 있는 포장재질과 방법의 사전검사와 표시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아서다. 처벌 조항도 한국이 독일보다 훨씬 높은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독일, 사전검사·표시의무 없어한국경제신문이 21일 법조계와 경제계 전문가들과 함께 독일의 신포장재법을 분석한 결과 해당 법안에는 포장재질 및 방법의 사전검사와 검사결과의 포장 겉면 표시 의무는 부여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법안에서 포장제품 사전등록과 포장재질 사후신고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자율 규제로 운영된다. 한 법조계 전문가는 "독일의 법 개정 취지는 사전 등록을 통해 허가된 포장재만 사용하고 재활용 관련 분담금을 지불하도록하는 것으로 사전 검사를 의무화한 한국의 법 개정안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 7조에서 제조사와 재활용업자가 재활용조직에 참여시 포장재 종류와 무게, 등록번호를 특정토록 하고, 10조에서 신고의무를 규정하면서 신고사항 중 하나로 등록번호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는 포장재에 등록번호를 기재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했다면 오독에 가깝다"고 이 전문가는 덧붙였다.
앞서 한 장관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12명의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안 관련 질의에서 "법안 취지에 동의한다"며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독일 법에선 비슷한 조항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포장방법 규제는 한국이 유일포장재질뿐 아니라 포장공간비율과 포장횟수 등 포장 방법에 대해서까지 규제하는 것도 독일 등 해외의 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대목으로 여겨진다.
현재 자원재활용법에 따르면 포장재질뿐 아니라 포장공간비율과 횟수 등도 규제 대상이다. 포장공간비율이란 포장물과 내용물의 부피 차이를 말한다. 과대포장이 논란이 된 후 급하게 만들어진 조항이라는 게 경제계의 주장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친환경 소재를 활용토록 하는 등 포장재질에 관한 규제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일괄적으로 포장물과 내용물의 부피차이를 계산해 벌금을 부과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 위반시의 강제조치도 한국이 독일보다 강력하다. 독일은 신포장재법 위반시 과태료를 부과한다. 한국의 경우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전 검사를 받지 않거나 거짓으로 표시하는 사업자에게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포장 규제를 위반한 사람에게 형사처벌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사후검사 합격률 80% 넘는데경제계에선 이번 법 개정이 과잉입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의 소지가 있어보이는 포장을 했을 경우 사후 검사를 통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현행 제도에서도 사업자들이 의무를 대체로 잘 준수하고 있다는 점이 근거다.
포장 규제 준수 여부에 대한 검사를 하고 있는 전문기관 중 한 곳인 한국환경공단이 공개한 2019년 포장검사 실적을 보면 총 검사횟수 3976건 중 80% 이상이 기준에 부합한 포장인 것으로 판정돼다. 합격률은 포장공간비율이 83%, 횟수가 86%, 재질은 100%다.
경제계에선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은 큰 비용을 감수하고 제도에 제품을 맞출 수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경제계 인사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영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