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엄마에게 더 많은 휴식을

입력 2021-02-08 17:45
수정 2021-02-09 00:11
지난해 우리 가정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니 ‘집안일이 이처럼 손이 많이 가나’ 새삼 깨닫게 됐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 청소와 정리, 세탁과 건조, 쓰레기 분리배출, 그리고 또 식사 준비와 설거지…. 주방을 최대한 넓고 편리하게 설계해 줬으니 내 임무는 다했고 아내도 편하리라는 짐작은 순전한 오해였다. 세탁기는 물론 건조기에 의류관리기, 최신 진공청소기까지 구입했으니 집안일은 오토매틱 돌아가리라는 것도 의도적인 착각이었다. 설비와 기계도 결국 사람이 작동시키는데, 매일 순환 담당은 늘 아내이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식사 횟수와 물량이 급증했다. 일찍 퇴근하는 나는 물론, 대학원생 아들도 원격 수업으로 자기 방에 움을 틀었으니 돌밥(돌아서면 밥 준비) 돌밥 돌밥 하루 세끼를 꼬박 준비해야 한다. 외국에 살던 딸과 사위 가족이 급거 귀국해 7인분을 준비할 때도 자주 있다.

식사 준비는 그래도 식구들 맛있게 먹일 생각에 견딜 만한데 문제는 식사 후에 가득 쌓인 그릇의 설거지다. 조리는 창조의 기쁨이 있지만 설거지는 뒤치다꺼리의 귀찮음뿐이다. 눈치껏 배달음식을 시키면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막강한 적을 만나야 한다. 아차, 우리 집에 식기세척기가 없는 걸 비로소 아쉬워한다. 집 리모델링 때 식구도 적고 집밥도 자주 안 하니 세척기 놓을 자리에 수납공간을 더 만들었던 게 패착이었다.

문명의 시작 때 남자는 농사와 유목을, 여자는 길쌈과 요리 담당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산업혁명으로 길쌈은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세탁과 설거지는 여전히 주부의 멍에였다. 1850년 조엘 휴튼이 최초의 식기세척기를, 1874년 윌리엄 블랙스톤이 최초의 회전식 세탁기를 발명했다. 나무통에 물을 담고 수동으로 회전시키는 초기의 기계였다. 발명의 계기가 존경스럽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덜기 위해, 특히 세탁기는 아내의 생일선물로 발명했다고 한다. 후일 전기가 보급돼 전기세척기와 전기세탁기로 발전했다. 흔히 이를 ‘가정의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세탁기가 가사노동의 해방을 가져왔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촉진시켰다고 정설로 믿었다. 과연 그럴까?

기술사학자인 루드 코완은 1983년 출간한 《엄마에게 더 많은 일을》에서 가정의 산업혁명으로 가정주부는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게 됐다는 역설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예전 며칠에 한 번 빨았던 침대보와 속옷을 매일 빨게 됐고, 주방의 편리함과 다양함으로 요리는 더 복잡해졌고 설거지할 그릇 개수도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기계와 설비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 가사를 절제하고 분담하지 않으면 주부의 가사노동은 줄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그래도 식기세척기는 들여놔야겠다. 이를 위해 이번 봄에 작지 않은 리모델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엄마에게 더 많은 휴식을’ 위한 우리 집 프로젝트의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