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배달의민족, 전국가맹점주협의회가 주축인 ‘배달의민족-자영업자 상생협의회’가 오는 15일께 출범한다. 상생협의회는 배달의민족 고객 정보 공개, 배달 앱상 점포 거리순 노출 등의 내용이 담긴 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그동안 자영업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배달의민족이 꺼려했던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근 여당이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이익공유제에 부담을 느낀 배달의민족이 ‘백기’를 든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상생협의회 설 연휴 이후 출범
5일 민주당·배달의민족·전가협 등에 따르면 민주당과 배달의민족, 전가협은 최근 ‘배달의민족 상생협의회’를 출범하는 데 합의했다. 설 연휴 직후인 15일께 협약식을 열 예정이다.
협약서에 따르면 향후 고객이 정보 제공에 동의할 경우 자영업자와 가맹점주들은 주문자의 전화번호와 과거 주문 횟수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관련 이익단체들은 그동안 고객 관리 차원에서 고객 정보 공개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등을 이유로 거부해왔다. 현재 양측이 합의 이후 막바지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달 앱상 광고는 고객과의 거리 순서에 따라 노출된다. 현재 배달의민족은 최상단에 3개 매장을 광고로 띄우는 ‘오픈 리스트’, 그 밑에 매장을 나열하는 ‘울트라 콜’ 등 두 가지 광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점주들은 오픈 리스트의 경우 건당 주문금액의 6.8%, 울트라 콜의 경우 매달 8만8000원의 광고료를 부담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거리뿐 아니라 광고 횟수와 주문량 등을 기반으로 한 배달의민족의 자체 알고리즘에 따라 고객에게 노출됐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은 이번 협약을 통해 모든 시스템에서 고객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매장이 최우선적으로 노출되게 하는 데 합의했다. 이 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앱 구성 방식을 어떻게 할지는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약에는 판촉 할인 행사를 할 때 비용 부담 비율을 점주에게 사전 통보해야 하는 내용도 담겼다. 배달의민족과 가맹본사, 자영업자 등이 각각 몇 %씩 마케팅비를 부담하는지를 미리 알려줘야 한다. 또 본사와 협의 시 가맹점주가 배달의민족 내 메뉴 가격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랜차이즈와 가맹점 간 영업구역을 조정하게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수수료와 광고비 산정 등도 협의회를 통해 결정하도록 했다. 다만 상당히 민감한 이슈인 만큼 협약서에는 관련 내용을 담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배달의민족·전가협, 자율이라지만…이번 협약서에는 배달앱 사업 수익이나 성장성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들도 들어갔다. 플랫폼 업체의 핵심 자산인 고객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기로 한 것 자체가 배달의민족으로서는 크게 물러선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배달앱 내 매장 노출에 있어 거리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것 역시 기존 사업 모델과 비교하면 큰 변화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배달의민족, 전가협 3자 모두는 자율 협약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하필 이익공유제 이슈가 불거지는 가운데 맺어진 협약이어서 배달플랫폼 업체를 향한 ‘팔 비틀기’의 결과물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배달플랫폼 기업들은 ‘코로나19 이익공유제’ 대상 가운데 1순위로 꼽혀왔다. 지난해 배달앱 결제금액은 12조2008억원으로, 전년(6조9257억원) 대비 75% 급증했다. 여당은 “코로나로 수혜를 본 플랫폼 기업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 “이익공유제는 온라인 기반으로 배달·쇼핑·마켓을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이 자영업자·배달노동자 등과 이익을 나누자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배달플랫폼 시장 1위 업체인 배달의민족으로서는 협약에 참여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당의 일련의 압박이 배달플랫폼의 수익·성장성과 관계되는 중요한 부분까지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누가 언제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 등 엄청난 가치를 지닌 데이터를 자영업자에게 공개한다는 건 업체로서는 상당히 큰 걸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상훈/박종필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