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교육·취업…식민지 차별은 일상이었다

입력 2021-01-28 17:37
수정 2021-01-29 02:44
일제강점기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학계의 오랜 대세는 ‘식민지 수탈론’이었다. 일제의 일방적인 착취로 한국이 회복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등장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여기에 대한 반론이다. 일제가 남긴 제도·사상적 유산이 한국의 근대화 및 고도성장에 일부 기여했다는 주장이다. 역사학 논쟁에 정치 이데올로기가 개입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일각에서는 “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이었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나왔다.

정연태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가 쓴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는 이런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정 교수는 “조선인은 일상적으로 일본인에게 극심한 차별을 당했다”고 지적한다. 주장은 새롭지 않지만 입증 방식이 특별하다. 저자는 해방 이전 25년간 충남 강경상업학교 학생 1489명의 학적부 등을 분석해 60개 넘는 통계표로 정리했다. 교지와 학생일기, 동창회보를 뒤지고 일본 도쿄로 날아가 생존 일본인 졸업생과 면담했다는 대목에서는 사실에 대한 집념이 엿보인다.

일제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원칙적으로 동등하다는 ‘내선일체’를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육과 취업 등 사회 전반에서 광범위한 차별이 자행됐다. 일제는 경성제국대학과 경성공업전문학교 등 주요 학교들의 조선인 신입생을 25%로 제한했다.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격차를 반영한 불가피한 결과”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인 상당수는 조선인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 교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경상업학교의 일본인 교사들은 조선인 학생들을 수시로 ‘망국민(亡國民)’ ‘야만인’ 등으로 불렀다. 조선인 학생이 작은 잘못만 저질러도 ‘망국민은 어쩔 수 없다’며 조선인 전체를 매도하기 일쑤였다. 이런 일상적 차별은 당시 일본인들의 뇌리에 박힌 ‘한국 멸시’ 관점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하고 주변 국가 침략에 성공하면서 ‘일본인 우월주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저자의 치밀한 조사와 분석만큼이나 결론도 인상적이다. “일본인들에게 차별을 당했으니 앞으로도 그들을 미워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조선족, 탈북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도 당시 조선인과 비슷한 차별에 직면하며 살아간다. 과거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의 차별 문제를 한번 더 성찰해야 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