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어린이가 비행기를 탔다가 흑인 남성을 보고 “저 사람이 비행기를 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어린이의 어머니는 “저 사람이 도둑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말하니”라고 물었다. 아이는 대답했다.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어요.”
제니퍼 에버하트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쓴 《편견》 서두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섯 살 어린이는 저자의 아들이다. 에버하트 교수는 대학 교육을 받은 흑인 1세대이자 인종 편견 문제 연구자로 손꼽힌다. 하지만 아들의 천진난만한 물음 속의 뿌리 깊은 편견에 당황한다.
조 바이든 신임 미국 대통령은 행정부 내 인종 편견 타파를 강조했다. 카멀라 해리스는 미국의 첫 여성·흑인 부통령이다. 로이드 오스틴은 유색인종 최초의 국방장관이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된 후 미국의 인종문제는 겉으로는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편견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알게 모르게 널리 퍼져 있다”며 “암묵적 편견은 인간의 두뇌 체계와 사회 격차가 만들어낸 일종의 왜곡된 렌즈”라고 단언한다. 편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인종에 대해 특정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일상에서 얻는 고정관념이 인종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편견의 기원과 사회문화적 현상, 편향된 인식의 작동 방식을 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분석한다. 편견의 원인은 비단 피부색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 지역, 체중, 말투 등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흑인의 이미지엔 가난과 범죄란 부정적 편견이 있다. 저자는 “다섯 살 아이조차 심각한 인종 계층화 사회에서 살고 있다”며 “설사 악의가 없다고 해도 흑인과 범죄라는 연관성이 모든 아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교육, 거주, 경제활동, 사법체계, 사회관계 등 삶의 모든 영역에 편견이 뿌리내린 가운데 그 편견의 피해자들은 오늘도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과 여성들이 편견으로 인한 희생자다. 유색인종의 고용률은 백인보다 현저히 낮고, 저임금 직무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며, 쾌적하고 안전한 거주 지역에 들어갈 기회가 차단된다. 법이 보장하는 사회 시스템의 경계에서 배격되고 사회적 빈곤 집단으로 추락한다. 이런 사이클이 악순환하며 인종적 불평등은 심화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종 편견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18~19세기엔 과학자들이 인종 차별을 옹호하는 논리를 펼쳤다. 유색인종의 생물학적 열등성 때문에 인종 계층은 고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진화론으로 당대 과학계에 혁신을 일으켰던 찰스 다윈마저도 흑인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저자는 “과학자들은 백인이 가장 지능이 높고, 최고로 진화한 인간이라고 여기며 흑인 노예제도를 찬성했다”고 말한다.
이런 불평등은 단지 유색인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른바 격차사회는 흑백 인종을 떠나 불평등과 단절이라는 비정상성 현상을 야기하고 가속화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일체감과 행복지수를 떨어뜨린다. 또 혐오와 질시, 무관심 같은 암울한 현상을 초래해 모두를 불행의 늪에 빠뜨리게 된다. 편견을 물리치는 건강한 해결 없이 갈등만 남는다면, 편견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편견에 물들어 버린다.
저자는 “편견에 대해 말하는 일은 단순히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화두이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이라고 강조한다. 또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을 포용해 반영하고, 기존의 소외된 목소리를 수용하고 들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