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김종철 고발에…"피해자 무시" vs "친고죄 폐지"

입력 2021-01-27 16:23
수정 2021-01-27 16:39


한 시민단체가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를 성추행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해자가 법적 대응을 원치 않은 상황에서 제3자가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고발을 해도 되냐는 것이다.

27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영등포경찰서로부터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고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며 “피해자 조사 등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 전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형사고소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활빈단이 지난 26일 김 전 대표를 강제추행 혐의로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장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시민단체에 유감을 나타냈다. 장 의원은 “처벌을 피해자의 의무처럼 호도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다움’의 강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가해자의 시인과 공당의 절차를 통해 성추행이 소명됐고, 공동체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입으로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면서 실상은 피해자의 고통에는 조금도 공감하지 않은 채 성폭력 사건을 자기 입맛대로 소비하는 모든 행태에 큰 염증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제3자가 성폭력 가해자를 고발할 수 있게 된 것은 성폭력처벌법에서 2013년 친고죄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장 의원이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고발이 있으면 수사가 가능하다.

제3자 고발로 수사가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민 단국대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장혜영은 친고죄가 왜 폐지됐는지 모르는 것 같다”며 “떠들썩하게 일을 키워놓고선 왜 남의 일에 끼어드냐고 언성을 높이냐”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피해자가 사법절차보다 조직 내 해결이나 별도의 제도를 활용해 해결하길 바란다면 이를 시도하고, 가능하지 않으면 사법 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것이다. 친고죄 폐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우려해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에 개정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고발및 수사가 이뤄지면 오히려 (피해자에겐) ‘내 의사에 반해 형사절차에 강제로 들어가게 된다’는 공포심을 안겨줄 수 있다”며 “피해자에게 고소하라고 종용하거나, 고소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것 모두 2차 피해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성폭력범죄의 친고죄 폐지에 따른 피해자 보호 및 지원 내실화방안’ 보고서도 “성폭력범죄가 곧바로 형사사법절차로 진입하면 피해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 정리하지도 못한 채 절차에 수동적으로 휩쓸리게 되거나 가해자로부터의 또다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피해자 의사를 무시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성폭력 사건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피해자 진술”이라며 “이 사건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고 의사를 표시하고 있어 별다른 증거가 없는 한 처벌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