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타격을 입은 세계 자동차 시장이 올해는 다소 회복세를 나타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다만 지역과 구매 성향별로 양극화가 한층 심화되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의 이동헌 지역분석실장(상무)은 12일 한국자동차기자협회가 개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제한된 성장세로 회복되면서 구조적 변화기에 진입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글로벌경영연구소는 지난해 세계 자동차 시장 판매 규모가 전년 대비 16% 감소한 7264만대에 그친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 시장의 경우 개별소비세(개소세) 인하와 신차 공세에 힘입어 185만대 규모로 6% 성장했지만, 같은 기간 대부분 국가는 침체를 면치 못했다는 설명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중국 자동차 시장은 1950만대로 전년과 비교해 6% 감소했고, 미국도 1458만대로 15% 후진했다. 유럽은 1347만대로 25% 쪼그라들었으며 신흥 시장도 1200만대로 26% 위축됐다.
연구소는 올해 세계 자동차 시장이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회복세는 더딜 전망이고, 양극화도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상무는 "2008년 금융위기는 선진국 금융에 국한된 충격이었기에 신흥시장이 회복을 견인했지만, 코로나19는 선진국과 신흥시장, 금융과 실물 모두에 충격을 줬다"며 "코로나19의 여파가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년 대비 9% 회복한 7910만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 2019년 자동차 시장 8670만대에 비해서는 91%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수준을 회복하려면 3년은 걸릴 것이라는 게 이 상무의 설명이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표되는 양극화 심화도 우려된다. 그는 "지역별로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은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신흥국은 회복이 더딜 것"이라며 "신흥국 판매가 급감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지역별 자동차 시장 예상 성장률로는 △미국 6.3% △유럽 13.5% △중국 9.7% △러시아 3.2% △아프리카·중동 4.0% 등을 제시했다.
지역별 구매 성향도 양극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 등지에서는 보다 비싼 상위 차급 판매가 늘어나는 반면, 신흥국에서는 경제성을 더욱 중요시해 신차 판매는 줄고 중고차 시장이 성장할 전망이다. 재정여력이 부족한 신흥국이 세금을 늘리고, 소비자들의 신차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는 5%였던 소비세를 15%로 높였다. 중형차(D세그먼트) 중심이던 사우디 자동차 시장도 준중형차(C세그먼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한 국가 안에서도 발견된다. 이 상무는 "지난해 3분기 미국 자동차 판매는 -9.7%를 기록했고 중형 세단은 -21.5%,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12.5%로 나타났다"면서 "대형 픽업트럭은 -1.3%, 고급 SUV는 -0.4%에 그칠 정도로 고급차 판매가 늘었고, 중형 SUV는 5.8% 성장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기관 만하임 컨설팅이 집계한 미국 중고차 시장 지표도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치인 164를 기록하는 등 확대되고 있다. 이전 같으면 소형 SUV나 중형 세단 신차를 구매했을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몰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로 완성차 업체의 실적 양극화도 예상된다. 선진국에서 고급차를 많이 파는 브랜드는 성장하고, 그러지 못한 브랜드는 도태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상무는 "미국과 중국 등에 포트폴리오를 갖춘 업체들은 빠르게 회복하고, 그렇지 않은 업체들은 판매가 줄어들며 수익성 싸움이 심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자동차로 낸 수익을 미래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러한 선순환이 이뤄지는 선도 업체들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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