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part.2 - 체외진단산업의 현재와 미래] 씨젠, 다중진단기술로 '신드로믹 검사' 시대 준비

입력 2021-01-22 08:37
수정 2021-07-11 11:08
<p> ≪이 기사는 01월 22일(08:37)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매체 ‘한경바이오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씨젠은 지난해 목표로 세웠던 연매출액 1조 원을 초과 달성했다. 국내서만 70곳이 넘는 업체가 코로나19 관련 진단제품을 내놓았지만 상장사 중 매출 1조 원의 벽을 넘어선 씨젠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다중진단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해외법인을 통해 영업력을 끌어올린 결과 다른 기업들에 비해 압도적인 실적이 나왔다.

일각에선 진단업계가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반짝 특수’를 누린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씨젠 내부의 시각은 이와는 정반대다. 이 회사는 생산시설을 현 수준의 2.5배 수준으로 확충해 올 1분기 내에 연간 5조 원 규모의 생산시설을 확보하기로 했다. 호흡기 매개 감염병 진단에서 분자진단이 일상화되고 증상이 나타나는 단계에서 수십여 개 병원체를 진단키트로 확인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선택이다.

25개 유전자 동시진단

씨젠은 ‘멀티플렉스’로 불리는 다중진단에 강점이 있는 분자진단 기업이다. 유전자증폭(PCR)을 위해선 검체에서 DNA를 채취한 뒤 이 DNA의 수를 증폭해 시각적으로 드러날 만큼 양을 늘려야 한다. 유전자를 증폭하기 위해선 증폭 장비의 온도가 40~90℃를 오가는 과정이 30~40회 동반된다. 온도에 따라 DNA의 분리와 복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DNA 조각이 프로브에서 떨어지는 온도를 각각 다르게 해 한 채널에서 5개의 유전자를 진단할 수 있는 TOCE 기술을 갖고 있다. 60℃, 65℃, 70℃ 등 온도별로 형광물질과 결합하는 DNA 조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통상 PCR 진단제품은 5개의 채널을 갖고 있다. 씨젠은 채널당 5개씩 모두 25종의 유전자를 한 번에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 박지훈 씨젠 신기술연구팀장은 “TOCE 기술을 적용하면 코로나19 유전자 3종, A·B형 독감, 세포융합바이러스(RSV), 아데노바이러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 다양한 바이러스를 한 제품으로 검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씨젠은 DNA 조각과 결합하는 물질인 프라이머와 관련해서도 DPO라는 독자 기술을 보유 중이다. 프라이머는 DNA 조각과 결합해 이 DNA의 복제를 유도하는 물질이다. DPO는 이 프라이머의 한쪽엔 특정 온도에서 바이러스의 DNA와 결합하는 뉴클레오티드 조각을, 다른 한쪽엔 특정 DNA에만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뉴클레오티드 조각을 붙이는 기술이다. 특정 온도에서 프라이머와 DNA가 결합이 일어나더라도 특이적으로 개발된 뉴클레오티드 부분과 DNA가 온전히 결합해야 유전자 증폭이 일어난다. 온도와 DNA 특이성이라는 이중 조건을 설정해 진단 정확도를 높인 것이다.

분석 기술도 있다. PCR 검사는 증폭을 위해 저온과 고온을 오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친 횟수를 뜻하는 CT 값을 세면 검체에 바이러스가 얼마나 있는지를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개 유전자를 하나의 튜브로 검사하다보니 기존 기술론 어떤 유전자가 유독 많이 증폭됐는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씨젠은 유전자 종류별로 증폭 횟수를 정량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MuDT 기술을 갖고 있다. 채널당 3개 유전자의 시험 결과를 분석할 수 있는 제품을 이미 판매 중이다.



7개 해외법인으로 영업력 확보

씨젠은 지난해 말 기준 해외에 7개 법인과 63개의 대리점을 두고 있다. 상당수 진단 기업들이 대리점이나 현지 중계상을 통해 영업을 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박 팀장은 “매출 60%가량이 독일,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중동에 있는 7개 해외법인에서 나오고 있다”며 “각국 정부 주도로 입찰이 이뤄지는 경우 법인이 있는 쪽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씨젠은 진단장비 매출도 크게 늘었다. 2019년 진단장비 판매량이 255대였던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진단장비 250대를 팔았다. 특정 프린터를 한번 쓰면 해당 프린터에 맞는 잉크를 계속 써야 하듯 진단장비도 해당 회사의 진단시약을 계속 사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씨젠이 판매 중인 진단제품은 자궁경부암, 성 관련 감염증, 설사, 식중독 등 150여 종에 달한다.

이 회사는 유전물질 추출 장비와 유전자 증폭 장비를 판매하고 있다. 해당 제품을 이용하면 증폭 장비에 PCR 제품을 설치하는 과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정을 수작업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분자진단 일상화된 시대 준비”

향후 사업으로 이 회사가 눈여겨보는 분야는 ‘신드로믹 검사’다. 신드로믹 검사는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병원체를 한 번에 검사하는 증상 기반 검사법이다. 고열과 기침이 있는 경우 해당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감염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로 어떠한 질환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분자진단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감염병 방역과 함께 신드로믹 검사가 일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팀장은 “수십개 유전자를 한 개 튜브로 검사할 수 있는 실시간 유전자증폭(RT-PCR) 기술을 살려 신드로믹 검사 시장에 안착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인증받은 제품 생산을 늘리고 장비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씨젠은 지난해 매입한 경기 하남시 부지에 생산시설을 도입해 2020년 말 연간 2조 원 규모 수준이던 생산 능력을 올 1분기 안에 5조 원 수준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지금보다 자동화 수준을 높여 추출 장비에서 꺼낸 튜브를 증폭 장치에 설치하는 절차도 없애 생산의 신속·정확성을 증가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기존 3~6시간이던 검사시간도 최소화해 현장진단으로서의 경쟁력도 끌어올릴 계획이다.

장기적으론 추출시약, 진단시약의 개발과 생산, 장비 공급을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진단 사업 부문의 수직계열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도 갖고 있다.

천종윤 씨젠 대표는 “분자진단이 우리 일상에 생활 검사로 자리 잡으면 지역 병원 단위에서 분자진단 검사를 받고 증상 원인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자진단 제품들을 지역별 수요에 따라 자체적으로 개발 및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