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매년 글로벌 100대 기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금년에는 한국 기업 중 삼성전자가 유일하며, 지난 10년간 단 한 곳도 100대 기업에 새로 진입하지 못했다. 올해 100대 기업 중 미국은 37개로 10년 전보다 9개 늘었고, 중국 18개, 일본 8개, 독일 5개, 프랑스 4개, 캐나다 4개다. 10년 전보다 중국이 11개, 일본이 5개 늘었고 경쟁국 대부분은 증가했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면 포브스지에서 선정한 글로벌 100대 기업이 많은 국가는 기업지배구조 순위나 소액투자자 보호 순위에서 상위를 기록하고 있을까? 한국은 세계경제포럼(WEF)의 기업지배구조 순위 141개국 중 21위, 세계은행(WB)의 소액투자자 보호 순위는 190개국 중 25위다. △미국은 지배구조 31위, 소액보호 36위 △일본은 지배구조 41위, 소액보호 57위 △독일은 지배구조 52위, 소액보호 61위로 한국이 다소 높은 편이다.
반면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와 글로벌 투자분석회사 CLSA 보고서는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순위가 2018년 아시아 12개국 중 9위에 그쳤다고 한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중국(10위), 필리핀(11위), 인도네시아(12위)라면서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가 낙후됐다고 한다.
이런 통계만 봐도 지배구조에 관한 국제 평가 기관의 순위가 제각각인데, 과연 어떤 합리적인 연관관계가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지배구조 순위 1위와 2위인 뉴질랜드와 싱가포르는 100대 기업이 없다. 소액투자자 보호 순위 1위인 케냐는 글로벌 기업이 없고, 2위인 말레이시아 최대 기업인 메이뱅크는 349위다. 이 순위에 따르면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큰 미국, 일본, 독일도 기업지배구조가 한참 낙후됐다고 해야 한다. 또 소액투자자 보호 1위인 케냐가 한국보다 훨씬 더 선진화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WB 보고서의 조사방법론에 대한 논란이 제기돼 평가 결과 정정을 예고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를 아시아 최하위 그룹으로 평가해온 ACGA는 소속 회원의 80%가 기관투자가로 구성돼 있어 이 기관의 순위가 과연 평가 대상인 기업의 현실을 합리적으로 고려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나름대로 공신력이 있다고 평가되는 국제 기관들이 내놓은 자료에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이런 순위를 지표 삼아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낙후됐다고 단정 짓고, 급기야 개선하겠다면서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기업지배구조가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나 경영 실적, 국가 경제 발전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순위에만 집착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낙후돼 문제투성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지배구조나 소액투자자 보호 순위는 그냥 참고 사항일 뿐이다. 기업지배구조에는 주식시장 지배의 미국형, 가족·그룹 지배의 일본형, 은행 지배의 독일형 세 가지가 있으며, 이 중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에 관해서는 정답이 없다. 세계의 석학들도 기업 경영이나 지배구조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고,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바로 정답이라고 한다.
일부 기업인 일가의 일탈 행위는 분명 잘못이고 처벌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조직의 일원이 부정행위나 뇌물 사건에 연루됐다고 해서 모든 조직원을 같다는 식으로 일반화해서야 되겠는가. 기업의 형태는 다양하고 서로 다른 구조와 환경에 처해 있는데, 모든 기업을 같이 취급하며 체제 전체를 매도하고 스스로를 폄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많은 국가는 어떻게든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 나는 경쟁을 하고 있다. 기업 활동에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피땀 흘리며 노력하는 기업에 찬물을 끼얹는 우를 범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