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멜팅팟 내각'…이번엔 원주민계 발탁

입력 2020-12-18 17:19
수정 2020-12-19 03:41

조 바이든 미국 차기 행정부 내각에서 장관급 이상 여성·유색인종 숫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초대 내각의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초의 여성 장관, 최초의 흑인 장관, 최초의 원주민 장관 등 ‘최초 타이틀’도 쏟아지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공언한 대로 미국의 성, 인종 구성 등을 닮은 ‘미국 같은 내각’의 탄생이 임박한 것이다. 하지만 능력보다 성이나 인종을 우선하면서 일부 인사는 상원 인준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17일(현지시간) 바이든 당선인이 내무장관에 뉴멕시코주 연방 하원의원인 뎁 할랜드(69)를, 환경보호청(EPA) 청장에 노스캐롤라이나주 환경장관인 마이클 리건(44)을 내정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할랜드 의원은 원주민 출신 여성이다.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미 건국 244년 만에 첫 원주민 출신 연방정부 장관이 탄생하게 된다. NYT는 “내무부는 미국 역사의 많은 기간에 원주민 공동체를 폭력적으로 대하고 한쪽 해안에서 다른 쪽 해안으로 분산시키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내무부에 원주민 출신 장관이 나오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리건 내정자도 상원 인준을 받으면 EPA 50년 역사상 첫 흑인 청장이 된다. EPA는 기후변화, 친환경 에너지 등 바이든 당선인의 핵심 공약 이행을 이끌 기관으로 꼽힌다.


이들의 발탁으로 바이든 내각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반영하는 ‘멜팅팟(용광로) 내각’ 성격이 더 뚜렷해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내각에서 장관급 이상은 부통령을 포함해 모두 23명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까지 18명을 지명 또는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여성이 9명, 유색인종이 11명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 초대 내각 땐 여성과 유색인종이 각각 4명에 그쳤다. 트럼프 초대 내각에 비해 바이든 내각은 여성은 2배, 유색인종은 거의 3배로 늘어나게 됐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내각(여성 8명, 유색인종 10명)보다도 더 다양성이 커진 것이다.

아직까지 법무·상무·노동·교육장관과 중소기업청장 인선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바이든 내각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다양성이 뚜렷할 게 확실시된다. 실제 재닛 옐런 재무장관 내정자는 첫 여성 재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내정자는 첫 흑인 국방장관,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 내정자는 첫 성소수자 장관 후보자다. 대만계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첫 유색인종 통상 수장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는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환영받고 있다. 하지만 흑인, 원주민, 아시아인, 여성, 성소수자 등 각 집단이 서로 ‘지분’을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능력과 자격 요건 등은 뒷전으로 밀리는 ‘정체성 정치’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보건복지부 장관에 캘리포니아 법무장관인 하비에르 베세라가 내정된 데 대해 히스패닉계라는 점과 진보 인사라는 점이 인선에 영향을 미쳤다며 “진보세력은 열광하지만 베세라의 시각과 보건 분야 경험 부족은 혹독한 검증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첫 흑인 국방장관에 내정된 오스틴 전 중부군사령관도 논란이다. 오스틴은 흑인 의원들이 ‘흑인 국방장관’ 지명을 요구하면서 천거한 인물이다. 하지만 전역한 지 4년밖에 안 돼 미국의 ‘문민통제’ 전통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는다. 군 출신이 국방장관이 되려면 전역한 지 7년 이상이 지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의회가 특별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데, 공화당의 다수당 수성이 유력한 상원이 그렇게 해줄지 불확실하다는 전망이 많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