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헬스&뷰티(H&B) 스토어 롭스가 롯데마트에 흡수통합된다. 부진한 유통 사업을 합쳐 경영을 효율화한다는 전략에 따른 조치다. 과거 롯데시네마 등을 운영하는 시네마사업본부를 독립시킨 적은 있지만 사업부를 통합하는 조직 개편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초 시작된 롯데그룹의 유통 사업부문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적 부진 롭스, 롯데마트에 통합롯데쇼핑은 17일 이사회를 열고 마트 사업부에 롭스 사업부를 합치기로 결정했다. 롭스는 롯데마트 내 상품기획(MD)본부의 H&B부문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신선식품·가공식품·패션 등과 함께 롯데마트가 담당하는 상품군 중 하나가 된다. 롭스가 빠진 롯데쇼핑 사업부는 백화점, 마트, 슈퍼, e커머스(전자상거래) 등 4개로 줄어든다.
롭스는 2013년 롯데슈퍼 소속 태스크포스팀으로 첫발을 뗐다. 이듬해 별도 사업부로 독립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당시 H&B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화장품과 생필품, 가벼운 먹거리를 한 번에 살 수 있어 2030세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시장이 커지자 롯데 말고도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 유통 대기업들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점유율이 50%를 넘는 CJ올리브영을 제친 곳은 없었다. 2위를 노리는 경쟁자가 늘어나는 만큼 나머지 업체들의 수익성은 떨어졌다. 최근 뷰티 전문 편집숍인 외국계 ‘세포라’와 신세계 ‘시코르’도 가세했다. 3분기 기준 CJ올리브영 점포 수는 지난해 말(1246개)보다 6개 늘어난 반면 롭스 점포는 129개에서 108개로 21개 줄었다.
점포를 줄여도 롭스 실적은 개선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점포가 큰 타격을 입었다. 올해 롯데쇼핑에서 롭스와 e커머스가 포함된 기타 사업부문은 3분기까지 총 217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1924억원)을 벌써 넘었다. 롯데쇼핑 경영진 사이에서도 롭스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전략적 결합으로 수익성 높이겠다”롯데마트가 롭스를 어떻게 끌어들일지 구체적 방안은 내년 1분기에 확정될 예정이다.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우선 롭스 브랜드를 없애고 뷰티 상품군을 롯데마트 매장 안으로 들이는 방법이 있다. 롯데마트 점포 중 롭스가 입점해 있는 곳이 많아 실현하기 어렵지 않다.
롭스 매장을 그대로 두고 롯데마트와 롭스의 상품을 각 매장에 교차 배치하는 방안도 가능한 옵션 중 하나다. 롯데마트 점포에 롭스 뷰티 제품을, 롭스 점포에 식품 또는 마트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들이는 식이다. 도심 대로변에 있는 롭스 매장에 마트 제품을 진열하면 H&B 스토어의 주 타깃인 젊은 층과 1인가구가 쉽게 접할 수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급변하는 유통환경에서 실적 부진이 심각한 롯데쇼핑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생필품 외 접점이 크지 않은 마트와 롭스를 전략적으로 결합한다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 대표에 롭스 전 대표 앉혀올해 롯데는 전례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1967년 제과산업으로 시작한 롯데는 그간 유통 화학 레저 등으로 사업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 1979년 세워진 롯데쇼핑도 백화점과 마트, 슈퍼와 롭스를 열고 우리홈쇼핑(롯데홈쇼핑) 지분을 인수하는 등 확장만 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경영권 분쟁, 지난해 한·일 관계 악화 등 악재를 잇따라 겪었다. 올해는 코로나19까지 덮쳤다. 온라인 업체들의 공세에 대응해 롯데온을 선보였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롯데쇼핑은 올초 5년 내 매장 200여 곳을 줄이겠다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적 악화로 당초 일정을 2년 내로 확 앞당겼다. 롯데마트의 롭스 흡수통합은 롯데 유통 사업의 대수술이 속도와 폭에서 더 강화된다는 의미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정기 임원인사 때 롭스 대표를 따로 임명하지 않고 공석으로 남겨 놨다. 그리고 롯데마트 신임 대표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롭스 대표로 일한 강성현 롯데네슬레코리아 대표를 앉혔다. 롭스의 마트로의 통합을 미리 예고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