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조원 규모에 달하는 증권업계의 대체투자 전 과정을 아우르는 가이드라인이 연내 나온다.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 자산의 부실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산실사와 사후관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 사태 확산을 미리 막자는 취지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는 증권사 대체투자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협의를 거의 마쳤다. 금투협은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조만간 가이드라인을 협회 차원의 자율규제인 모범규준으로 제정할 계획이다.
당국 관계자는 “대체투자 관련 증권사 내부조직에서 의사결정 체계, 평가, 사후관리 등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라임 등 사모펀드 사태와 함께 국내·외 대체투자 자산의 부실우려가 불거지자 올 초부터 대체투자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증권업계는 수년전부터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을 중심으로 국내·외 부동산과 항공기,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체자산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려왔다.
금감원이 지난 5월 펴낸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를 보면 증권사들의 대체투자 자산은 국내(40조4000억원)와 해외(16조6000억원)을 합해 모두 57조원에 이른다. 특히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에 지분 재매각(셀다운)을 염두에 둔 해외 부동산 투자가 급증했다. 급기야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 등 일부 유럽지역에서는 한국 증권사들끼리 빌딩 인수를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영업논리’가 우선하다보니 현지 자산실사나 리스크 평가 등은 자연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증권사가 셀다운에 실패해 자산을 떠안거나 판매한 자산에서 부실이 불거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신한금융투자의 독일 헤리티지나 KB증권의 호주 부동산펀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래에셋그룹은 지난해 미국 호텔 15곳을 약 7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지난 5월 매각 측의 계약위반을 이유로 파기하고 소송전에 들어갔다.
이에 금감원은 가이드라인에 투자자산의 딜소싱(투자처 발굴)을 맡은 영업조직과 실사(듀 딜리전스) 등 심사·평가를 담당하는 조직을 분리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상당수 증권사들에서 영업조직이 딜소싱과 자산 심사·평가를 함께 맡다보니 부실 위험이 있는 물건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증권사의 대체투자가 고유재산 투자와 셀다운의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는 점에 착안해 각자 특성에 맞는 가이드라인도 제시할 계획이다. 셀다운의 경우엔 자산을 사들인 기관이나 개인투자자에 대한 보호 의무가 강화된다.
자산에 대한 평가도 객관적 평가조직과 절차·기준 등을 갖추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다만 구체적인 평가방법론은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이슈’와 관련된 사항도 제외됐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