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조 바이든의 델라웨어 연설을 듣고

입력 2020-11-11 17:51
수정 2020-11-12 00:04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는 진보이지만 소위 말하는 ‘강남좌파’를 살이 떨리도록 싫어한다는 사람이다. 나는 그 친구를 농반진반으로 “너는 진짜 진보(진정한 보수)”라고 약을 올린다.

그런 친구가 미국 정치판과 선거를 보고 한마디 했다. “친구야, 미국에 인간이 그렇게 없는가.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선거 후에 하는 꼴이 이게 뭔지…. 미국 사람들 별거 아니네.” 그러면서 “우리도 잘만 하면 미국과 맞짱 떠도 되겠다”고 자신 반 자조 반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를 얘기했는데, 분명히 지금은 ‘혼돈의 시대, 악의 축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도산 선생 탄신 142주년 및 도산아카데미 제5대 이사장 취임식 행사에 다녀온 날 밤 나는 그분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발자취를 되새김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델라웨어 연설을 듣고 우리 언론이 만든 기사 꼭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미국인들이여! 공동체가 만들어 놓은 가치를 회복하고 재건할 ‘치유의 시간’이 왔다.”

도산 선생은 1878년에 태어나 1938년 옥고에 따른 숙환으로 별세하기까지 육십 평생을 살면서 우리 민족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나는 너를 탓하고, 우리 민족의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로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 하고 남만 책망하시오.” 과거를 부정하고 적폐몰이로 편가르기를 하며 ‘내로남불’과 확증편향이 난무하는 지금 세태를 우리 면전에서 엄중하게 꾸짖는 말씀이나 다름없다.

우리 주변에는 선조와 선각자들이 만들어 놓은 귀한 가치가 많다. 멀리 다른 곳을 기웃거릴 이유가 없다. 바이든의 연설이 아무리 감동적일지언정 거기에 마음을 뺏길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만들어 놓은 가치, 이것들이 값진 것이라는 신념, 그리고 이 신념이 깨지지 않게 굳건히 지키는 용기’다. 시키는 대로 시류에 따라 행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좋은 의지대로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이는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를 살리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과 맞서고 있는 중견기업인들의 애로를 듣는 자리가 있었다. 금융의 그늘진 곳을 한탄하는 어느 기업인의 토로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그 기업인에 따르면 1996년까지 신용보증기금 보증한도는 고작 15억원에 불과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그나마 배로 늘려 30억원이 됐다. 그렇게 2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보증기금법의 보증한도는 30억원 그대로다.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300명이 4년간(2016~2020년) 매일 쏟아 낸 법안(발의건수)은 평균 17건. 지난 6월부터 시작된 21대에서도 국회의원 300명이 지금까지 하루 평균 35건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법안도 24년째 제자리인 신용보증기금법을 현실에 맞게 손보자는 내용은 없다. 올해 정부가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으로 무려 66조원을 편성했는데, 이 가운데 급조한 사업이 적지 않아 불용 처리될 금액이 6조원을 넘을 것이란 추산도 있다. 이 중 단 1%만이라도 돈이 궁한 기업들의 보증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나오면 어떨까.

말로만 경제를 살리고, 기업을 위한다고 할 게 아니라 당장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이런 애로부터 풀어주는 게 진정으로 필요한, 귀한 가치이자 용기 아니겠는가. 얼마나 더 많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얼마나 더 많은 자영업자와 기업이 무너져야 노도와 질풍과 같이 달리는 법과 정책과 제도 몰이가 멈춰 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