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석의 메디토크] 코로나 백신·치료제 개발만큼 중요한 것들

입력 2020-11-09 17:37
수정 2020-11-10 07:13
팬데믹 양상을 보이고 있는 코로나19 전파 과정은 각 나라의 사회·문화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철저한 봉쇄로 아직까지 방역에 성공하고 있는 뉴질랜드와 대만 같은 나라가 있는가 하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50배에서 수백 배까지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정치지도자 등 유명 인사가 확진된 사례가 나오지 않았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영국 총리,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같이 유명 인사의 확진이 속출하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에 비해 미국과 유럽은 대중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포기하지 못하고 지속하는 문화적인 차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필자의 전공인 척수손상의학은 사회적인 영향이 매우 큰 분야다. 1980년대 이후 가장 많이 분류되고 있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척수손상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자동차 안전, 특히 음주운전 단속과 속도제한 등에 따른 긍정적 효과로 보인다. 이 분야의 의료 수요는 1990년대 이후 계속 감소하는 추세여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인력의 필요성도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배달 문화가 발달하면서, 배달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척수손상 장애 비율이 급속히 늘고 있다. 게다가 선진국에서나 발생하던 스포츠 레저 활동으로 인한 척수손상도 경제 발전과 더불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1년에 몇 명 보기 어려웠던 다이빙으로 인한 척수손상도 이제는 몇십 명씩 발생하고 있다. 자동차 운전 못지않게 실내수영장, 펜션과 같은 휴양시설 풀에서의 안전교육이 절실한 시점이 된 것이다.

최근 국내 스마트 모빌리티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공유 전동킥보드 관련 규제를 완화키로 한 점도 그렇다. 공유 스타트업 활성화라는 산업적인 고려로 인해 청소년층에 집중될 새로운 양상의 교통사고 후유장애인이 대거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1990년대 국제 학술지 보고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서는 낙타 같은 큰 동물이 자동차와 함께 도로 위를 다니는데, 이들 낙타와 충돌한 자동차 전복사고로 인한 척수손상 환자 발생률이 높다는 이색적인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다. 중동 국가 부유층에는 낙타가 부(富)의 상징이며, 일반 도로에서도 낙타가 다닐 수 있게 하는 문화적인 특색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는 거의 없는 총상에 의한 척수손상이 미국에서는 자동차 사고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보인 적도 있다. 북유럽 국가에서도 총상에 의한 척수손상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미국처럼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로 총기 자살 시도로 인한 척수손상이 보고되는 것이 커다란 차이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개선하기 힘들었던 것이 우리나라 병원의 면회 제도와 간병 문화였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3차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면회 제도가 개선되고 있었는데, 감염병 확산 위험이 큰 여러 요양병원, 재활병원의 환자 면회와 간병 문화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모든 요양병원 종사자와 간병인들의 코로나 전수조사 및 철저한 교대자 관리, 면회 제한이 시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후진국 수준에 머무르며 바뀌지 않던 병원 면회 문화가 코로나19 사태로 강제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현대사회의 질병과 의료 문제는 단순한 의료기술 발전과 재정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사회의 역사, 문화, 국제적인 관계, 지정학적인 상황이 질병의 발생 원인과 전파 양상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감염병을 포함한 새로운 질병 발생 시 초기 방역과 역학조사, 철저한 모니터링과 백신 및 치료제 개발도 중요하지만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