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정준칙을 1년 단위가 아니라 ‘3~5년 평균’ 기준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재해나 경기침체 때는 재정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도 둘 방침이다. 느슨한 형태의 유명무실한 재정준칙이 도입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추석 연휴 전에 재정준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등 재정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정한 규범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34개국이 도입했다. 한국은 2016년 정부 입법으로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우선 3~5년 평균 재정수지 적자율이나 정부지출 증가율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이 3~5년 평균 -3%를 밑돌지 않도록 하는 안이 거론된다. 이렇게 되면 재정준칙 준수 여부를 3~5년 뒤에야 확인할 수 있다.
또 여당에서 관리재정수지가 아니라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 막판에 바뀔 가능성이 있다. 통합재정수지는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으로, 관리재정수지와 달리 4대 보장성 기금이 포함돼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올해 4차 추경 기준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6.1%,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는 -4.4%다.
정부는 국가채무를 재정준칙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세수는 늘지 않는데 정부 지출은 급증해 앞으로 국가채무를 줄이기 쉽지 않아서다. 정부는 최근 2020~2060년 장기재정 전망을 발표하면서 2045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99%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재정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예외규정도 담길 전망이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건을 준용해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시 재정준칙 적용을 예외로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경기침체의 구체적 요건을 명시하지 않거나 국회 동의를 받으면 예외로 인정받게 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재정준칙의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재정준칙이 목표로 한 숫자들을 법에 못박지 않으면 재정준칙이 확장 재정을 위한 명분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