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곳저곳의 기업문화

입력 2020-09-10 17:09
수정 2020-09-11 00:04
가족기업(family-owned company)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의 다른 대기업도 가족기업 형태가 많다. 유럽의 폭스바겐·포르쉐와 LVMH, 로슈도 마찬가지다. 거대 기술 기업인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도 소수의 대주주가 지배하는 구조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 재벌이 독특한 이유를 꼽자면, 오너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지만 외부 경영진에는 의존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오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종종 기업문화로 뿌리내리게 된다는 점도 남다르다.

내가 일하는 스위스무역투자청의 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400명이 넘는 스위스의 간부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준비하는데 내게 자문한 적이 있다. 스위스 기업이 한국 기업과 비즈니스를 할 때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5년 전 같았으면, CEO는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의 스위스무역투자청 사무소를 골라 조언을 구했을 테지만, CEO가 한국을 사례로 들었다는 사실에 나는 매우 기뻤다. 한국 경제의 잠재력과 역동성이 스위스 비즈니스 업계에서도 이제는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평판도 높아졌다는 것을 반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원인을 가늠하기란 물론 쉽지 않다. 한류의 성공 때문일 수도, 방탄소년단(BTS)이나 영화 ‘기생충’ 때문일 수도, 어쩌면 한국이 코로나19와 성공적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위스 기업이 한국 기업과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가 CEO에게 조언한 얘기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먼저 한국 대기업의 독특한 가족경영 구조와 그룹마다 제각기 다른 기업 문화, 무엇보다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스위스 기업인들에게도 신뢰란 매우 친숙한 개념이다. 다만, 한국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형성된다. 개인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보다는 순전히 사업적으로 봤을 때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굉장히 빠른 회신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스위스 기업인의 경우,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결과가 나온 후에야 상대방에게 연락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영인들은 일의 진행 과정에서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외에도 한국 기업의 특성과 조심해야 할 점에 대해 몇 가지 더 말했지만, 여기에 전부 써 내려가기엔 공간이 부족할 듯싶다. 결국 오해라는 것은 양쪽에서 모두 생기곤 한다. 그러니 한국 기업들도 서양의 경영인, 특히 스위스의 경영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더 잘 이해해 두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