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장기업법 제정안' 폐기가 답이다

입력 2020-08-12 17:49
수정 2020-08-13 00:16
지난 7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장회사에 관한 특례법(상장기업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자기주식 처분 방법 제한’, ‘합병·자사주 처분에 대한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의무 공개매수제 재도입’ 등이다. 취지는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분산돼 있는 상장회사 관련 규정을 통합해 별도 법률을 제정하기로 한 것”과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해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 제정안이 상장사에 대한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반드시 알아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상장사란 상장심사라는 엄격한 절차를 거친 검증된 기업이라는 점이다. 즉,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기업인 것이다. 둘째는 상장사가 시장의 신뢰를 잃는 순간 해당 기업은 물론 근로자, 주주, 채권자, 하도급 거래업체, 파트너 업체 등 수많은 이해관계 당사자의 생존이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이번 상장기업법 제정안은 그 취지가 무엇이든 위의 두 가지 사실에 긍정적인 신호를 줘야 정당성과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제정안은 이 두 가지 점 모두에 문제가 있는 법안인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이 법이 제정되면 국내 거래소에 신규 상장하려는 잠재적 유니콘 기업들이 예외 없이 해외거래소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차등의결권 부여가 불법인 국내법상 상장 후 회사 규모가 커지는 경우 최대주주의 지분이 희석돼 경영권 방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경우 배당가능이익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세력에 처분해 왔다. 이 법이 제정되면 그마저도 못 하기 때문에 우리 거래소에 상장하는 순간 우량기업이라면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성장을 자신하는 창업자라면 미국이나 홍콩, 영국 거래소에 직상장하는 명분을 확실히 얻게 되는 것이다.

또 잠재적 유니콘 기업들이 상장 전에 기존 상장사와 합병하는 것은 우회상장에 해당해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우선 상장 후 대기업과 합병해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톡옵션 등을 통해 수고한 직원들에게 보상을 해 왔다. 상장기업법이 제정된다면 최대주주들은 의결권행사를 제한받기 때문에 당연히 국내 기업과의 합병을 회피하게 될 것이다.

제정안대로 의무공개매수제가 도입된다면 흡수되는 상장사든, 존속하는 상장사든 합병을 거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흡수하는 회사는 25% 이상 지분을 소유하지 못하는 문제를 겪고, 흡수되는 회사는 50% 이상의 지분을 의무적으로 매각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즉, 합병 시 황금비율에 해당하는 34% 지분율 확보가 두 당사회사 모두에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법이 제정되면 우리 자본시장의 인수합병(M&A)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상장실질심사 때 최대주주의 재정건전성은 물론 적격성 등이 중요한 상장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는 최대주주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정안대로 최대주주의 자사주 처분 시나 합병 시 의결권이 제한된다면 해당 상장사의 시장 신뢰도는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장의 신뢰를 잃은 기업은 자금조달의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수많은 이해관계 당사자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국가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 역시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일부 상장사 최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해당 기업에 손해가 발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상법, 자본시장법, 형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재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아무리 봐도 상장사규제특례법제정안의 폐기만이 답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