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의 기업워치]쪼그라드는 농가소득에 수입 제품 공세까지…힘 못쓰는 농기계 업체들

입력 2020-07-13 09:37
수정 2020-07-13 09:39
≪이 기사는 07월10일(11:0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농기계 업체들이 좀체 힘을 못쓰고 있다. 농가소득이 줄면서 설비투자 여력마저 사라지고 있어서다. 국내 농기계 시장 자체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데 일본 등 해외 농기계 업체들의 공세는 거세지고 있다. 내수 성장의 구조적인 한계와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인해 농기계 업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농기계 업체들의 신용도가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말 LS엠트론의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을 종전 A2에서 A2-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1일 국제종합기계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로 부여하면서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달았다. 국제종합기계의 신용등급이 BB급의 최하단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동양물산기업의 회사채 신용등급(BB+)에도 부정적 등급전망을 달아 놓은 상태다. 주요 농기계 업체의 신용등급이 모두 위태로운 상황이다. 국내 주요 농기계 업체 중 대동공업(CP 기준 A3)에만 아직 별다른 '위험 경고'가 없다.

국내 농기계 시장은 대동공업, 동양물산기업, 국제종합기계, LS엠트론 등 상위 4개 업체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글로벌 농기계 시장 전망은 그리 나쁘지 않다. 세계 인구 수 증가와 산업화에 따른 농기구 기계화로 연평균 5% 이상의 성장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농기계 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미·중 무역 분쟁 심화 등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환율 등이 농기계 업체들의 실적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대외 변수만 부정적인 건 아니다. 국내 쌀 수요가 꾸준히 줄고 있는데 일본 농기계 업체들이 국내에 직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성장이 정체된 내수 시장에서 업체 간 경쟁만 심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대동공업은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 다양한 농기계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내수 점유율이 30% 안팎에 달한다. 내수 시장 정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중국, 유럽, 캐나다 등 해외 현지법인을 잇따라 설립하고 수출 확대 전략을 세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자체 영업망을 구축하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납품을 통해 수출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운전자본과 투자 소요 증가로 재무부담은 늘어나는 추세다. 농기계 산업은 계절적인 가동률 편중이 심해 고정비 부담과 대리점에 대한 판매장려금 정책 부담 등이 상존하는 특징이 있다. 대동공업은 미국법인의 차입금 관련 보증을 제공하고 대동기어와 한국체인공업의 사모사채·CP 발행 관련 보증액을 늘리면서 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 규모를 확대했다. 2015년 말엔 242억원이었는데 올 3월 말 기준으로는 1573억원으로 뛰었다.

LS엠트론은 트랙터와 사출성형기 등 기계 부문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연결 기준 기계 부문 매출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는데 기계 중에서도 트랙터 매출이 60%를 넘었다. 주력 사업인 트랙터 부문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신제품 개발과 배기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개발비 부담으로 수익성 둔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업 전반의 부진한 실적이 지속되는 가운데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상승, 대손상각비 인식으로 영업적자 폭이 커졌다.

국제종합기계는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부채비율이 336.2%에 달한다. 높은 원가 부담과 판매 수수료로 인해 저조한 수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양물산기업 역시 최근 5년간 평균 매출 대비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EBIT)이 0.4%에 그치고 있다. 동양물산기업은 2016년 특수목적회사(SPC)인 케이에이엠홀딩스를 통해 국제종합기계 지분 27.1%를 160억원에 인수했는데 재무적 투자자의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되파는 권리) 행사에 따른 추가 지분 인수에 대한 부담도 있다.

IB 관계자는 "내수 시장 정체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데다 수입 제품 판매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농기계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창출한 현금으로 재무안정성을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단기적으로 저조한 수익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