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묶음할인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재포장 금지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업계 의견 수렴 절차에 나섰다.
환경부는 10일 식품 제조업체 32곳, 주류·화장품 제조사 29곳,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 14곳, 시민단체 7곳 등 총 82곳을 초청해 ‘재포장 금지 협의체’를 구성하고 서울 모처에서 첫 간담회를 열었다.
▶본지 6월 22일자 A1, 2면 참조
환경부는 간담회에서 3단계 협의 방안을 제시했다. 다음달 초까지 협의체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확대 협의체를 꾸려 9월 초까지 논의한 뒤 마련된 대안을 두고 대국민 공청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10월에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각 업체에서 제품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포장은 무엇이 있는지 오는 17일까지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의견 수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연세대에 의뢰한 연구용역 과정에서도 업계 의견이 반영됐고, 지난달 업계 간담회 때도 요구해 서면 제출을 받았다. 환경부가 원점에서 검토하기로 하면서 업계로서는 같은 의견을 다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 참석자는 “당장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가이드라인을 실무적으로 논의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이런 속도로는 내년 1월 법 시행 전 새로운 규제에 맞게 생산라인을 바꿀 수 없다”고 우려했다. 다른 참석자는 “지금까지 접수된 내용을 바탕으로 당장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 환경단체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지난 3일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지만 환경단체, 업계 간 견해차만 드러났다. 환경운동연합 출신인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사의 보도로 법 시행을 미루게 됐는데 그게 최선이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이 정도(재포장 금지)의 약한 규제조차 업계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플라스틱을 어떻게 줄일 것이냐”며 “생산자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지난 1일부터 ‘제품의 포장 재질·방법에 관한 기준에 관한 규칙(재포장 금지법)’을 시행하려고 했다. 유통·식품업체 40여 곳을 불러 법령에 따른 세부지침(고시 및 가이드라인)을 설명하고 금지되는 재포장 유형을 통보한 바 있다. 적발 시 제조사와 유통사에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에 묶음 판매는 하되 가격을 할인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환경보호를 명분으로 가격을 규제한다는 반발을 샀다. 또 금지 대상이 되는 재포장과 과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해 혼선을 빚었다. 환경부는 결국 시행을 1주일 앞두고 내년 1월로 6개월 미루기로 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