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없는 LG전자도 어닝서프라이즈

입력 2020-07-07 15:29
수정 2020-07-07 15:46

LG전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파고를 순조롭게 넘었다. 시황을 덜 타는 반도체가 없음에도 지난 2분기 중 시장 예측을 훌쩍 뛰어넘는 깜짝실적을 내는 데 성공했다. 의류청정기, 세탁기, 냉장고 등 생활가전 제품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변곡점은 미국 유럽 등의 가전유통 매장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 지난 6월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보복적 소비’ 수요를 쓸어담는데 성공했다. 업계에선 코로나19를 계기로 LG전자가 글로벌 생활가전 업계 1위자리를 굳혔다는 평가가 나온다.○증권가 추정치 훌쩍 뛰어넘어LG전자는 7일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LG이노텍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12조8340억원의 매출과 493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7.9%, 영업이익은 24.4% 감소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지난해보다 줄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증권사가 내놓은 LG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추정치 평균은 4009억원이었다. 영업이익만 보면 시장 예측을 20% 이상 뛰어넘은 ‘어닝서프라이즈’다.

주력 제품인 생활가전이 제몫을 다했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LG전자 생활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가 두 자리 수 영업이익률을 지킨 것으로 보고 있다. 13.9%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던 지난 1분기에 버금가는 성과다. 의류청정기를 필두로 한 ‘신 가전’이 효자노릇을 했다는 것이 LG전자의 설명이다. TV 업황도 우려한 것보다는 나았다는 분석이다. OLED TV, 나노셀 TV 등 프리미엄급 제품들이 꾸준히 팔리면서 이익을 방어했다.

스마트폰과 전장 사업에선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만년 적자’ 꼬리표가 붙어있는 스마트폰 사업은 우려한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늘고 영업손실도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제품 스마트폰 ‘벨벳’이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전장 사업은 적자가 확대됐다. 완성차 업체들의 셧다운이 잇따르면서 매출과 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LG전자는 2016년 1분기부터 잠정 실적을 공시하고 있다. 주주와 투자자 편의를 위해서다. 사업본부별 세부 실적 등은 이달 말 실적설명회에서 공개한다.○글로벌 경쟁자들과의 격차 벌려
LG전자는 글로벌 생활가전 업계 선두주자다. 지난 1분기 HA사업본부는 5조4180억원의 매출과 75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이 13.9%에 달했다. 매출에서 경쟁사인 월풀(약 5조1623억원), 일렉트로룩스(약 3조3000억원) 등을 앞섰다. 두 회사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각각 6.0%와 0.5%로 LG전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삼성전자도 LG전자 못지않게 생활가전 부문에서 선방했지만 분기 매출 규모는 5조원을 넘기지 못했다. CE(소비자가전) 부문에서 TV를 담당하는 VD사업부 매출을 빼면 4조6500억원 안팎이 나온다.

LG전자와 월풀의 격차는 2분기 들어 더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입은 북미 사업 비중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LG전자 HA사업본부의 북미 시장 매출 비중은 24%다. 56%에 달하는 월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분기 북미시장 위축에 따른 영향을 월풀이 더 많이 받았을 것으로 관련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의 승부만 따져도 LG전자가 월풀에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지난 6월 중순부터 지난달 말까지 2주 간 이어진 독립기념일 프로모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90%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가전제품 구매가 어려웠던 미국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4~5월에 매출 손실을 상당부분 만회했다는 설명이다.미국 최대의 가전유통업체 베스트바이는 3월말부터 대부분의 점포를 폐쇄했다. 매장이 다시 문을 연 것을 5월 말부터다. 6월 중순에야 800개점 가량이 문을 열었다.

회사 관계자는 “6월 판촉전에서 유연한 글로벌 SCM(공급망 관리) 시스템의 덕을 톡톡히 봤다”며 “제품 구색과 물량 면에서 셧다운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월풀 등 해외 경쟁 업체들을 압도했다”고 설명했다.

‘새 공장’ 효과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LG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초기에 미국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지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했던 세이프 가드(특정 품목 수입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공장은 최신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있어 코로나19 셧다운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크지 않았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