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집콕'하며 닛신식품 컵라면 먹었다

입력 2020-06-28 17:26
수정 2020-06-29 00:57
일본 도쿄 신주쿠의 닛신식품 본사 직원식당에는 올해 특식이 52차례 나왔다. ‘2020년 시가총액 1조엔 달성’을 목표로 내건 4년 전부터 이 식당엔 주가 게시판이 설치됐다. 주가가 오르면 호화로운 특식이 나오고 떨어지면 소박한 식단이 나온다.

닛신식품 주가는 올 들어 거침없이 올랐다. 지난 3월 27일엔 9440엔(약 10만65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이 회사 시총은 이달 26일 9904억엔으로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닛신식품은 1958년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면’과 1971년 최초 컵라면인 ‘컵누들’(사진)을 개발한 회사다. 컵누들은 2016년 세계 누적 판매량 400억 개를 돌파했다. 2010년대 들어 저출산·고령화에 발목을 잡혔다. 젊은 층의 라면 소비가 줄면서 일본 시장 규모가 수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성장 정체에서 탈출할 기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제공했다.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멈추자 라면 소비가 급증했다. 안도 기요타카 닛신식품 회장은 지난 3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1~5월 매출이 두 자릿수로 늘어났는데 이 추세가 연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닛신식품은 ‘코로나 반사이익’을 본 식품업체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3월 한 달간 일본 슈퍼마켓에서 라면이 전년 동기 대비 13% 늘어난 719만 개 팔렸는데, 닛신식품 컵누들이 가장 인기였다. 내년에 출시 50주년을 맞는 컵누들 매출은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에 처음으로 연매출 1000억엔을 돌파하기도 했다.

최초의 컵라면이 식지 않는 인기를 구가하는 건 ‘늙지 않기 때문’이란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소비자 취향 변화를 정교하게 파악해 시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작년 히트작은 ‘컵누들 된장(미소)맛’이었다. 외출 제한령이 내려진 올 상반기엔 칼로리가 낮은 프리미엄 면을 내놨다. 지난달부터는 도쿄와 오사카 일부 지역에서 스마트폰으로 주문할 수 있는 ‘배달 라면’을 개시했다.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미국에서는 전자레인지 전용 ‘컵누들 스타프라이’로 승부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끓는 물을 붓기보다 전자레인지로 익혀 먹는 걸 좋아한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신제품은 벌써 12종. 작년 같은 기간보다 4종 많다.

닛신식품은 ‘코로나19 이후’에 대비한 전략을 짜고 있다. 이번 타깃은 중장년층이다. 대규모 재해 후엔 오랜만에 컵라면을 맛본 소비자가 같은 상품을 계속 찾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