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금이 빠르게 늘어도 신용등급이 오르는 기업은

입력 2020-06-24 13:33
수정 2020-06-25 21:04
[06월 24일(13:33) '모바일한경'에 게재된 기사입니다]모바일한경 기사 더보기 ▶



(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신용평가사가 기업의 신용등급을 매기면서 가장 자주 하는 표현 중 하나는 "차입금이 큰 폭으로 증가해 재무부담이 커졌다"일 겁니다.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에 대해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기업은 다양한 이유로 차입금을 늘릴 수 있습니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불안할 때 미래에 대한 우려로 미리 돈을 쌓아 놓으려고 차입금을 늘릴 수 있겠죠. 당장 신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현금성자산이 부족할 때도 차입금을 늘릴 수 있습니다. 차입금에는 금융비용이 발생합니다. 돈을 빌리면 이자를 지급해야 하니깐요. 별다른 이유없이 차입금을 늘리는 기업은 없습니다.

통상 기업들은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충분하지 않을 때 차입금을 늘립니다. 운영자금도 필요하고,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 상환 자금도 필요한데 갖고 있는 돈이 부족하니 돈을 빌리는 것이죠. 이렇게 차입금이 늘어나면, 기업 입장에선 채무상환 부담이 또 늘어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랍니다.

이 때문에 기업 신용평가 때 차입금이 한 번에 크게 증가하는 건 부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됩니다. 신용등급 하향 조정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죠.

물론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습니다. SK에어가스가 대표적입니다.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SK에어가스의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을 종전 A3+에서 A2-로 한 단계 올렸습니다. SK그룹 계열사 중심의 수요 기반을 바탕으로 빠르게 매출과 이익을 늘린 덕분이죠.

그런데 SK에어가스의 총차입금을 보면 증가세가 꽤 가파릅니다. 2016년 말까지 만해도 1000억원에도 한참 못 미친 741억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말에는 1410억원으로 늘더니 2018년엔 3018억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지난해 말엔 3048억원을 기록했고요. 총차입금 추이만 보면 결코 신용등급이 오른 기업이라고 보이진 않습니다.

나이스신용평가도 이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신용등급을 올리면서 "투자 소요로 부(-)의 잉여현금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총차입금 규모가 크게 증가한 상태다.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264.2%로 높은 수준이다"라고 진단했거든요. 그러면서 "중단기적으로 투자부담에 따른 부족자금 발생과 채무부담 증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답니다.

하지만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렇게 판단을 했습니다. "SK에어가스는 우량 계열사의 안정적인 물량을 기반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투자 이후 이익창출능력 확대 등의 투자성과가 원활하게 발현되고 있다. 외견상 재무지표 대비 실질적 재무안정성은 양호한 수준이다"라고 말입니다. 쉽게 말해 SK에너지, SK이노베이션, SK케미칼, SKC 등 우량 계열사로부터 확보 가능한 안정적인 물량이 차입금 부담을 상쇄시켰단 의미입니다.

물론 모든 신용평가사가 이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닙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 역시 최근 SK에어가스에 대한 신용평가를 단행했습니다. 종전 A3+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과가 나왔고요. SK에어가스 신용등급에 대해 신용평가사간 다른 의견을 낸 겁니다. 동일한 사업 구조와 재무지표를 보고 내린 평가인데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생겼을까요.

한국기업평가 역시 SK에어가스가 그룹 계열사 내 고정 거래처를 기반으로 양호한 사업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높게 평가했습니다. 다만 나이스신용평가와 달리 설비증설로 재무안정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전망을 신용등급에 좀 더 비중 있게 반영했습니다. SK에어가스의 투자 계획이 영업현금흐름에 비해 과중한 수준이라 차입금이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고 진단한 것이죠.

실제 SK에어가스는 영업실적이 호조세이긴 하지만 2017년부터 시설투자 확대로 인해 잉여현금흐름(FCF)은 적자가 이어지고 있답니다.

이와 관련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이런 평가를 내렸습니다. "SK에어가스의 경우 계획된 투자 지출이 끝나는 2023년 이후부터 잉여현금 창출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잉여현금이 창출되고 증가한 차입금 부담을 희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성과가 부각됐을 때 신용등급을 올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언제까지, 어느 범위까지 영향을 미칠 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외견상 재무지표 보다 실질적 재무안정성을 선제적으로 긍정적으로 반영하는 평가는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끝)/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