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담당 인력도, 지침도 없는 토지거래허가제

입력 2020-06-22 17:55
수정 2020-06-23 00:10
“답답합니다.”

23일 토지거래허가제 시행을 앞둔 서울 한 구청 담당자에게 “내일부터 주택 거래를 어떻게 할지 주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주거지 내 토지거래허가제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고 인력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무작정 제도가 시행돼 구청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라는 설명이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서울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에서 1년간 토지거래허가제를 시행한다. 주거지역에서 18㎡, 상업지역에선 20㎡ 넘는 토지를 살 때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사실상 지역 내 대부분 아파트와 상가가 대상이다.

허가 조건은 실수요다. 주택이라면 실거주를, 상가라면 직접 운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원칙만 제시했을 뿐 명확한 기준은 주무부처인 국토부도, 허가권자인 구청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은 잔여 전·월세 기간이 3개월이면 실수요인지, 5개월은 실수요로 볼 수 없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상가는 국토부가 일정 비율을 소유주가 사용하도록 기준 마련에 나섰지만 제도 시행 하루 전까지도 무소식이다.

인력 부족과 전문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강남구에선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등의 토지거래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단 한 명이다. 그마저도 중개업소 지도 단속 등 다른 업무를 겸한다. 팀 내에서 지원을 받아도 2~3명을 넘기기 힘든 구조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대치·청담·삼성동의 아파트 거래 건수만 월평균 50건이 넘는다. 빌라 단독주택 상가까지 감안하면 업무량이 20배가량 폭증하지만 인력 충원 대책도 없다.

1978년 도입된 토지거래허가제는 신도시를 조성하거나 도로를 건설할 때 투기세력 유입을 막기 위해 나대지를 묶던 조치다. 서울 내 남아 있는 구역은 땅 투기를 막기 위한 자연녹지 정도다. 강남 한복판에서 제도를 시행하는 데 대해 ‘주택거래허가제로 활용하기 위한 무리수’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이유다. 헌법이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와 사유재산권 보호 등에도 맞지 않는다.

법조계에선 중개사는 물론 변호사들마저도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작은 실수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만큼 권리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는 극단적인 규제책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민감한 규제를 내놓으면서 최소한의 준비와 홍보도 하지 않았다. 허가 없이 거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토지가격 30% 상당액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엄포만 놨다. 시장의 혼란이 뻔한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