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실업급여 폭증에 기금 고갈 위기 맞은 고용보험기금...대체투자 대폭 축소 나서

입력 2020-06-19 11:42
≪이 기사는 06월18일(07:2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모펀드(PEF)부터 벤처캐피탈(VC), 인프라, 항공기금융 등 다양한 대체투자 분야에 출자하며 업계의 '큰 손'으로 떠올랐던 고용보험기금이 대체투자 비중을 대폭 축소하고 나섰다. 경기 침체로 5월에만 실업급여 지급액이 1조원을 넘어서는 등 지출이 확대되면서 '수익성'보다는 당장의 '유동성'이 당면 과제로 떠오르면서다.

◆2024년까지 대체투자 비중 절반으로 줄여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최근 2024년까지의 투자 방향을 담은 중장기자산배분계획을 수립했다. 작년 말 기준 전체 자산의 14.77%에 달했던 대체투자 비중을 2024년까지 7.28%로 축소하고, 47.92% 수준인 채권 투자 비중을 61.77%로 높이는 것이 골자다. 대체투자의 경우 지난해 세운 2023년 목표치(10%)보다도 비중이 더 줄었다.



고용보험기금이 대체투자 비중을 대폭 줄인 것은 기금 적립금이 빠르게 줄면서 유동성 확보가 기금의 제1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 연기금인 국민연금을 비롯해 같은 고용노동부 산하 기금인 산재보험기금이 수익성 제고를 위해 대체투자를 중장기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과는 정 반대의 행보다.

2017년 10조 250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고용보험기금은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급여 증가 등 지출 증가로 2018년을 기점으로 하락해 올해 4월 기준 5조 1600억원으로 3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늘면서 지난 2월부터 실업급여 지급액이 폭증하며 지난 5월엔 1995년 고용보험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실업급여 월 지급 총액이 1조 162억원을 기록, 1조원 대를 넘어섰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실업급여 계정은 4조원대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즉 추가경정예산 확보 없이는 기금이 완전 고갈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어지면서 만기가 길고 유동성이 낮은 대체투자에서 채권, 단기자금 등 언제라도 팔 수 있는 자산군으로 자산 배분의 무게추를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애초에 고용보험기금은 수급의 불안정성이 크다보니 장기적인 대체투자보다는 유동성에 초점을 맞춰 운용이 이뤄져야 했다"고 말했다.

◆"수익성보다는 일단 유동성 확보가 먼저"



고용보험기금의 이 같은 방향 전환은 실제 투자 업계에도 여파를 미치고 있다. 고용보험기금은 2015년 한국투자증권을 주간운용사로 선정하며 수익률 제고를 위해 대체투자 비중을 본격적으로 확대했다. 2018년까지 매년 1000억~2000억 가량의 자금을 PEF, VC 분야에 출자했고, 2017년부터는 항공기금융, 인프라, 사모대출펀드(PDF) 등으로 투자 대상을 다변화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기금 감소가 본격화되면서 고용보험기금은 이후 대체투자 분야 신규 출자를 중단했다.

최근 시장 일각에선 고용보험기금이 출자한 대체투자 펀드의 출자자(LP) 지분을 다른 LP에 매각하는 LP지분 유동화 및 포트폴리오 청산 수익이 발생한 펀드의 조기 성과 분배를 요청하는 등 자금 확보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당장의 유동성이 급한 고용보험기금이 궁여지책으로 대체투자 자금의 유동화에 나섰다는 추측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기적으로 대체투자를 축소하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은 맞지만 당장 자금 회수를 검토하진 않고 있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3차 추가경정예산이 얼마가 확보되는지에 따라 구체적인 운용 방향도 세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 투자업계는 고용보험기금의 대체투자 축소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현 정부가 전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고용보험기금이 다시 대체투자 시장의 주요 LP로 복귀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출자자들이 모험 자본에 대한 출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한 때 주요 출자자로 기대를 모았던 고용보험기금의 퇴장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