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문당리 마을 100년 계획

입력 2020-06-15 17:15
수정 2020-06-16 00:03
도시계획과 도시정책을 전공하다 보니 그동안 수많은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해왔다.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져 도시나 건축물로 나타날 때 느끼는 희열과 보람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에 맞춰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선택하다 보면 과연 최선이었는지에 대해 항상 미련이 남는다.

오늘날 첨단 과학기술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예측기법이 발달했다지만 복잡한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체 어떤 경제학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었을까? 예측이 잘못됐다면 계획이 제대로 진행됐을 리 없지만, 그렇다고 계획 없이 행정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이 ‘계획의 딜레마’다.

몇 년 전 충남 홍성군 문당리에서 열린 워크숍 중 환경농업교육관에 전시된 ‘21세기 문당리 발전 백년계획’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의 대표적 법정 계획인 국토종합계획이나 도시기본계획의 기간조차 보통 20년인데 마을계획이 100년이라니, 이 작은 마을이 100년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설계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녹색연합이 주민들과 함께 작성한 이 마을계획은 지금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문당리는 관광지가 아닌데도 연간 3만 명이 찾아오는 우리 농촌교육과 유기농업의 대표마을이 됐다. 양병이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정년퇴임을 맞아 한 인터뷰에서 평생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 중의 하나로 문당리 마을 100년 계획을 꼽은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 실험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사람이 과거와 현재, 미래 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줬다. 실험에서 네 살짜리 아이들에게 지금 한 개의 마시멜로를 잠깐만 먹지 않고 참으면 돌아와서 두 개를 주겠다고 했을 때, 그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눈앞의 달콤한 유혹을 못 참고 먹어버렸다. 그런데 당장의 유혹을 이겨낸 아이들은 14년 후 달콤한 마시멜로의 유혹에 넘어간 아이들보다 훨씬 더 높은 학력과 자신감을 보여줬다.

비록 불확실한 미래를 우리가 제대로 예측하지는 못할지라도, 구성원이 현재 눈앞의 이익을 넘어 미래를 함께 설계한다면 그 자체가 학습 과정이 될 수 있다. 문당리는 마을 100년 계획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을 100년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마을 리더의 의지와 주민들의 공감 때문에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도시와 공간 계획 수립에 참여했지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선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문득 돌이켜본다. 누구처럼 무엇이 돼야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더라면 지금보다는 쉽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인생계획이 문당리 마을계획처럼 무엇이 되기 위한 계획일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짐하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