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04일(15:4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금융 불안을 막기 위해 내놓은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 탈프(TALF·기간자산담보대출)에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탈프는 미국 정부가 자동차 할부, 신용카드 대출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매입하는 투자자에 저리로 대규모 대출지원을 해주는 제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등장한 이 프로그램에 국내 투자자들도 참여해 10~30%대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은 탈프에 투자하는 미국 운용사 이엠피벨스타 펀드 재간접 상품을 선보여, 5억달러(약 6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이날 결성했다. 1억달러 출자 약정을 한 지방행정공제회를 비롯해 국내 주요 연기금·공제회와 보험사가 투자자로 참여했다. 현대인베스트먼트 외에도 다수의 국내 운용사들이 현지 운용사와 손잡고 재간접 상품을 준비중이다.
투자자들이 몰린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몇몇 국내 기관이 탈프 펀드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올린 경험 때문이다. 탈프를 통해 미국 여신 금융사의 학자금 대출, 신용카드 대출, 자동차 할부채권 담보 ABS를 매입하는 경우 대출지원을 받아 원금의 최대 10배 규모 증권을 매입할 수 있다. 예컨데 원금 10억원이 있다면 대출을 합쳐 100억원 규모의 ABS를 매입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낮은 대출금리와 비교적 높은 ABS의 금리 차이를 이용해 고수익을 낼 수 있다.
정부가 원금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대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주요 신용평가사 가운데 두 곳에서 신용등급 'AAA' 를 받은 증권만 대상에 포함시켜 안정성을 확보했다. 대출 조건도 파격적이다. 담보인 ABS 채권이 대거 부실화해도 담보물 보충 요구 등 마진콜을 하지 않는다. 대량 손실로 원금이 모두 날아가고 채무불이행이 발생해도 정부는 담보를 매각해 채권을 회수하는 데 그치고 차주에게 추가 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 언제든 수수료 없이 중도 상환을 할 수 있다.
2009년 미국 자산운용사의 탈프 펀드에 투자한 흥국자산운용과 신협중앙회 에이티넘파트너스 동부화재 등은 1년여 만에 30%대 수익을 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신용카드 채권 등이 무더기로 부실화할 가능성 때문에 투자를 포기한 곳이 많았으나 실제 부실률은 5% 이하에 그쳤다"며 "미국이 빠르게 위기를 극복한다는 쪽에 과감하게 베팅한 곳이 좋은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이번엔 금융시장이 조기에 안정되면서 평균적인 ABS금리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30%대의 고수익을 내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아 나온다. 그럼에도 낮은 손실 위험성을 고려하면 예상 투자수익이 매력적인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인베스트 관계자는 "10년전에 비해 금리 스프레드가 좁아지긴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는 여전히 ABS금리가 높아 좋은 투자 기회"라고 말했다.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탈프 투자 펀드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선보이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검토 끝에 포기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해 라임자산운용의 사기 행각과 은행권에서 판매한 독일금리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 등의 여파로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에는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