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테크기업' 쿠팡은 어쩌다 코로나에 당했나

입력 2020-05-29 17:25
수정 2020-10-09 16:45

쿠팡이 위기에 부닥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물류센터를 덮쳐 확진자가 잇따르고, 주문과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경기 부천 물류센터 한 곳에서만 관련 확진자가 엿새 만에 100명을 넘겼다. ‘제2의 신천지 사태’란 말까지 나온다. ‘한국판 아마존’을 모토로 국내 유통업계에 ‘빠른 배송’과 ‘싼 가격’으로 혁신의 돌풍을 일으킨 김범석 쿠팡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내부적으론 코로나19 확산과 배송 차질을 막으면서 소비자 불신까지 해소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았다. 업계에서는 “김 대표의 대응 방법에 따라 쿠팡의 존폐가 갈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리스크 관리시스템에 ‘허점’

이번 위기의 본질은 ‘리스크 관리 실패’다. 쿠팡은 2010년 8월 김 대표가 세운 회사다. 창업 10년이 채 안 됐다. 외형은 지난해 매출 7조원을 넘긴 대기업이지만 다른 대기업처럼 인사, 재무, 노무 등 각 분야에서 세밀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몸은 어른처럼 커졌는데 생각은 초등학생 같은 ‘불균형’ 상태라는 지적이다.

코로나19로 이런 불균형이라는 고름이 ‘안전’이라는 약한 고리에서 터졌다. 쿠팡은 지난달 2일 ‘쿠팡 뉴스룸’이란 사이트에 자신들의 방역 노력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고, 매일 소독과 방역이 이뤄지며 발열 체크와 직원 추적관리 등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상은 달랐다. 방역당국 조사 결과, 부천 물류센터 내 직원들의 안전모, PC 등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됐다. 확진자가 발생해 회사가 소독 조치한 뒤에도 바이러스는 남아 있었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고 일했다는 직원들의 증언도 속속 나왔다. 흡연실, 직원식당 등 ‘마스크 사각지대’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 김 대표가 사업 전략을 짜고, 이를 투자자에게 설명하고 추진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나 리스크 관리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다.


소통 부재도 문제

‘소통의 부재’는 쿠팡의 또 다른 취약점이다. 쿠팡은 자신들을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정의한다.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을 100배 만족하게 한다’는 모토를 내걸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떼서 파는 ‘유통 기업’이란 타이틀을 스스로 거부했다. 테크놀로지 기업의 경쟁력은 데이터에서 나온다. 소비자가 무엇을 많이 주문하고, 어떤 상품을 선호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모두 수치화해 분석한다. 쿠팡이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극도로 꺼린다. 심지어 내부 직원들조차 쿠팡의 주문 건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직원 수가 몇 명인지 모른다. 자기가 하는 일이 아니면 데이터 접근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데이터를 통제하는 것이다.

자랑하고 싶은 것은 밝힌다. 김 대표는 지난 1월 말 “하루 주문 건수가 330만 건을 처음 넘겼다”고 직원 메일을 통해 알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문이 밀려들자 내놓은 수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트럼프식 소통’이란 평가를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린다는 얘기다.

이런 소통 방식이 코로나19로 ‘역풍’을 맞았다. 쿠팡에선 지난 23일 첫 확진자가 나왔지만 직원들에겐 이 사실이 곧바로 공유되지 않았다. 수백 명의 근로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다음날 출근했다. 방역당국이 역학조사를 위해 요구한 직원 명단도 뒤늦게 제출해 논란이 됐다.

‘투잡 근무자’ 많아 사태 커져

쿠팡에 노무 문제는 ‘아픈 손가락’이다. 김 대표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자다. 쿠팡의 핵심 서비스인 로켓배송은 ‘가장 빠르게’, ‘가장 효과적으로’ 배송하기 위해 구축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돌리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쿠팡은 가장 빠르게 사람을 채워넣을 수 있는 방식을 적용했다. 일용직을 대거 투입한 것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쿠팡 부천 물류센터의 정규직 비율이 3%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근무 직원 3673명 중 정규직은 98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수치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쿠팡에 일용직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쿠팡은 물류센터뿐 아니라 배송에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쓴다. 일당을 받는 ‘쿠팡 플렉스’ 배송에 등록된 사람만 1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하루 최대 1만 명 가까이 동원된다.

이들은 코로나19를 더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쿠팡뿐 아니라 다른 물류센터 혹은 다른 일터에서도 일하기 때문이다. 부천 물류센터 인근 콜센터와 경기 광주의 한 식품회사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확진자들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