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사진)이 오는 27일 ‘벽을 뛰어넘는 과학기술’을 주제로 열리는 ‘스트롱코리아 포럼 2020’을 앞두고 “수학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24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생성과 빅데이터 분석의 기본인 수학과 연관된 초·중·고교 교육 시스템을 일신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각계 전문가 20여 명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 수학·과학 교육 혁신위원회’를 다음달 발족한다. 위원회가 마련한 수학 교육과정 개편안은 교육부 장관이 참여하는 사회관계장관회의에 정식 회부할 계획이다.
그는 또 “산업의 판도를 바꿀 파급력을 지닌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AI 컴퓨팅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과 연구 생태계 조성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수학의 변신은 끝이 없다…양자컴·AI·핀테크로 무한확장"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 포럼 기조연설자 2人과 서면 좌담회
27일 열리는 ‘스트롱코리아 포럼 2020’ 기조연설자인 로버트 슈터 IBM 퀀텀 총괄부사장, 군나 칼슨 아야스디 창업자(미국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서면(書面) 좌담회를 했다. 과기정통부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온라인 포럼으로 열리며 유튜브로 생중계한다.
슈터 부사장은 IBM에서 37년간 일하며 의료, 보험, 석유 및 가스, 유통, 농업 등 산업 전방위에 걸쳐 기계학습(머신러닝) 및 최적화 서비스를 제공해온 수학자다. 2016년부터는 IBM 양자컴퓨터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클라우드 기반 범용 양자컴 서비스를 세계에서 처음 선보였다. 18대의 양자컴을 이용해 수천억 번의 시뮬레이션을 했고, 세계적으로 23만여 명의 전문가 커뮤니티를 보유하고 있다.
칼슨 교수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차세대 구글’로 지목한 기업 아야스디를 2008년 창업했다. 그는 ‘위상수학 기반 AI 데이터 분석(TDA)’ 기술을 세계 최초로 내놨다. 이 기술은 암 당뇨 등 난치병 질환에 대한 맞춤형 치료, 금융권 돈세탁 방지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 장관이 질문하고 두 연사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최기영 장관=대한민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과기정통부 주도로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9대 전략, 100대 추진과제를 설정했다. AI 기계학습과 수학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가.
▷칼슨 창업자=주요 구성요소 분석을 위한 행렬론(matrix methods), 베이지언 모델링 등 확률론(stochastic methods), 인공신경망 등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조합론(novel combinatorial methods) 등에서다. AI와 수학은 시너지 효과가 아주 크고, 모든 종류의 수학은 AI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AI는 더 많은 수학적 연구를 유발하는 풍부한 ‘문제은행’이 될 것이다.
▷최 장관=수학자로서 양자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슈터 부사장=2016년 이전엔 양자컴을 거의 접해본 적이 없다. 물리학자가 담당하는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파고들수록 수학과 양자 물리 간 상호작용에 매료됐다. 지난해 말엔 《댄싱 위드 큐비트》란 책을 펴냈다. 양자컴을 시작하기 위해 알아야 할 수학 지식을 소개한 책이다. 양자컴의 연산 단위인 큐비트는 수학식으로 전부 표현될 수 있다.
▷최 장관=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신약 개발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다. 양자컴이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 있나.
▷슈터 부사장=자연은 양자컴 작동 원리인 양자역학의 법칙 아래 움직인다. 양자컴은 자연의 화학적 성질을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약물, 화합물, 2차전지 배터리 재료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다. 신약 개발은 현재 양자컴 성능으로 볼 때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실질적인 사례(use case)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기업, 대학과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IBM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JP모간체이스, 엑슨모빌, 다임러, 액센츄어, 골드만삭스, 보잉 등 11개 전략적 협업사 및 스타트업, 대학, 연구소 등 100여 곳과 양자컴 개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최 장관=위상수학과 위상수학적 데이터분석(TDA)에 대해 소개해달라.
▷칼슨 창업자=다양한 차원에서 ‘모양(shape)’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양적이 아니라 질적 방법으로 모양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른 왜곡 등을 배제하고 ‘불변하는 속성(invariant)’을 파악한다. TDA는 ‘빅데이터를 기계가 가장 사용하기 쉽게 다듬는 AI 기술’로 보면 정확하다. 왜곡이 없어진 인간의 눈과 뇌를 기계(컴퓨터)에 장착하는 것이다. 방정식, 공식 등 수학이 불편한 사용자도 AI를 쉽게 다룰 수 있게 해준다.
▷최 장관=텐서, 최적화 이론 등을 잘 알면 우수한 AI를 구현할 수 있고 위상수학, 통계학 등을 잘 다루면 빅데이터 분석을 잘할 수 있다. 수학의 핵심 개념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미래 사회의 중요한 역량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칼슨 창업자=동의한다. AI를 이용해 혁신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수학적 지식’을 갖는 것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유리하다. 흥미로운 점은 수학적 정리(결론)가 아니라 그 정리에 도달하는 기법(technic)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수학을 바깥 세계(산업, 학문 등)에 적용하는 데 한계는 없다.
▷최 장관=IBM 퀀텀 사업부의 혁신을 장려하는 노하우가 있나. 또 관련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가.
▷슈터 부사장=IBM 과학자들은 전 세계 양자컴 전문가 커뮤니티를 이루는 23만 명 이상과 교류 협력하면서 100여 개 이상 파트너 기관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구축된 생태계에서 혁신적 아이디어들이 생성되고 있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하버드대·프린스턴대·스탠퍼드대, 캐나다 워털루대 등 협력 대학에선 양자기술 전담 교육팀을 배치했다. 컴퓨터과학부터 화학, 경영학 수업 등에서 양자컴에 익숙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달 초 4일간 진행한 ‘IBM 퀀텀 챌린지’엔 전 세계 1740여 명이 참가해 하루 10억 회 이상 양자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는 기록적인 횟수다.
▷최 장관=핀테크(금융기술)에서도 양자컴이 활용될 수 있나.
▷슈터 부사장=IBM은 바클레이즈, JP모간, 웰스파고, 일본 미쓰비시은행 등과 함께 다수의 양자컴 관련 논문을 냈다. 대부분 리스크 분석, 옵션 가격 책정에서 애플리케이션 연구를 다뤘다. 지난해 JP모간과는 ‘양자컴을 활용한 옵션 가격 결정’ 논문을 발표했다. 기존 ‘몬테카를로’ 방식 대비 업무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바클레이즈와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정산거래 규모 및 가치 최적화 기법을 연구했다.
▷최 장관=HSBC 등이 아야스디의 TDA 소프트웨어를 사용 중이라고 들었다. 어떤 역할을 하나.
▷칼슨 창업자=돈세탁은 은행업계에서 심각한 문제다. 대형 은행은 표준화되지 않은 거래를 찾기 위해 조사 인력을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아야스디의 소프트웨어는 ‘감시’와 ‘정밀조사’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AI 도구다. 특히 ‘긍정 오류(false positive:존재하지 않는 것을 있다고 진단하는 오류)’ 부문에서 상당히 극적인 개선을 이끌었다. ‘충분히 의심스럽다’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거의 해롭지 않은 금융 거래가 엄청나게 많은데, 이를 사전에 제거했다. 이런 AI 도구는 조사 업무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최 장관=한국의 과기정통부는 지난해부터 5큐비트급 양자컴 기술 실증을 목표로 2023년까지 연구개발에 445억원을 투자한다. 미국은 2018년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NQI)’ 법안을 수립하고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에 ‘국가양자조정실’을 설치했다. 지원 규모가 얼마나 큰가.
▷슈터 부사장=NQI 법안 수립 이전에도 미국 정부는 양자컴 연구를 많이 지원했다. NQI는 변화무쌍한 양자컴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갖출 수 있게 통일된 전략을 수립했다. 양자컴이 ‘완전히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경제적 기회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점을 미리 간파한 미국 정부에 박수를 보낸다.
▷최 장관=한국 고교 수학에서는 AI의 기본인 선형대수를 배우지 않는다. 제도권 수학 교육이 부실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칼슨 창업자=고등학교는 가장 생산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기관이다. 가능한 한 수학 교육을 최대로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나 시민단체가 수학 학습 과정에 ‘(정치적인) 물타기’를 하는 것은 지지할 수 없다.
▷최 장관=초·중·고교 학생들에게 AI의 기본인 선형대수학(행렬·벡터) 등을 더 넓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제풀이 강요와 암기가 아니라) 한 문제를 장시간 고민해 풀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문제해결’ 과정을 중시하는 쪽으로 (수학 교육 과정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최 장관의 이 같은 의지에 따라 다음달 출범하는 ‘민관 합동 수학·과학 교육 혁신위원회’엔 과기정통부, 교육부 등 부처 관계자와 박형주 아주대 총장, 이경화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