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짜 보고서, 유튜버만 돈 번다" 증권사 유료화 움직임

입력 2020-05-17 17:57
수정 2020-10-13 15:26
하루에 나오는 증권사 리포트는 100개가 넘는다. 시황을 다루는 한 쪽짜리 보고서부터 50쪽이 넘는 산업 리포트까지 다양한 주제와 기업이 다뤄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에서 리포트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지만 고학력 애널리스트들이 들이는 공은 엄청나다.

하지만 대부분 공짜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공들여 생산한 리포트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리포트 유료화를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공짜 보고서를 줄이면서 장기적으로 유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2주 걸려 완성한 보고서…수명은?

분량에 따라 다르지만 ‘산업 개괄+개별 기업 분석보고서’의 틀을 갖춘 50페이지짜리 리포트를 쓰려면 약 2주가 걸린다. 우선 주제에 맞는 산업을 선정하고 관련 기업을 추린다. 이어 개별 기업에 직접 연락해 탐방 날짜를 잡는다. 기업을 방문해 공장설비를 확인하거나 담당자를 인터뷰하면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다. 기업 탐방은 애널리스트가 ‘촉’을 받기 위한 필수코스다. 탐방에서 얻은 정성적인 정보에 정량적인 재무정보까지 더해 최소 3개의 개별 기업보고서를 작성한다. 마지막으로 주제 선정 배경과 업황 등을 정리해 종합면을 작성하면 한 편의 보고서가 완성된다. 애널리스트가 리포트만 작성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세미나 등 다른 일정이 겹치면 들이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이렇게 공들여 작성한 리포트의 수명은 길지 않다. 시장 상황에 따라 며칠, 몇 주 만에 상황이 뒤집힐 수 있다. 작년 말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증시 상고하저’를 예상하며 최소 5명이 참여한 연간 전망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개월 만에 뒤집혔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3월 초, ‘2020년 주식시장 전망 수정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몸값 높이려는 대형사

그동안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발간하는 보고서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외국과 달리 무료 배포가 관행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형 증권사들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유료화에 앞서 접근 권한에 차등을 두거나 보고서 일부만 공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KB증권은 목차 등을 공개하되 전문은 리서치 홈페이지인 ‘KB리서치’에서만 볼 수 있는 리포트 수를 늘리고 있다. 이 보고서는 KB계좌를 보유한 고객만 열람할 수 있다. NH투자증권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나 해외 채권, 미국 리츠 등 다른 증권사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자사 홈페이지에서만 전문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열람권은 계좌 보유 고객에게만 있다. 아예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고 책자로만 받을 수 있는 보고서도 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도 일부 보고서는 전용 앱으로만 배포한다.

최근 산업환경이 급변하고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리서치센터에 변화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산업환경 변화로 기업에 컨설팅해주는 컨설턴트들이 무단으로 증권사 리포트를 활용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어 컨설팅회사에는 리포트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버들도 증권사들이 경계하는 대상이다. KB증권 관계자는 “유튜버, 블로거, 투자카페 운영자가 무단으로 가져가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가 있어 다운로드할 수 없는 PDF 뷰어 형태로 올려두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수익성 악화도 증권사들이 리포트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배경이다. 리서치센터는 돈을 벌어오는 부서가 아니라 돈을 쓰는 부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이를 유료화해 가치를 높이지 않으면 리서치센터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증권사들의 판단이다. 글로벌 증권사들은 대부분의 리포트를 유료로 판매한다.

중소형사는 부담

고객을 늘려야 하는 중소형사에는 유료화가 오히려 부담이다. 대부분 증권사가 사업보고서에 리서치센터 리포트 판매업무를 등록했지만 여전히 기관투자가, 자산운용사 등에 무료 배포하고 있는 이유다.

전면 유료화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이다. 개인 고객 수요가 많은 기업 분석 보고서의 경우 열람을 제한했을 때 정보비대칭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유료화할 수는 없다”며 “컨설팅회사, 연구소 등 리서치센터와 경쟁 관계에 있는 기관들에 무료로 제공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