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번이' 하세요"…알뜰폰 가입자 빼가는 이통사들 [김은지의 텔레파시]

입력 2020-05-13 09:02
수정 2020-05-13 09:08
[편집자주] 정보기술(IT)의 바다는 역동적입니다. 감탄을 자아내는 신기술이 밀물처럼 밀려오지만 어렵고 생소한 개념이 넘실대는 통에 깊이 다가서기 어렵습니다. 독자들의 보다 즐거운 탐험을 위해 IT의 바다 한가운데서 매주 생생한 '텔레파시'를 전하겠습니다.


"알뜰폰에서 넘어오면 차비 드려요." 솔깃한 제안에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알뜰폰에서 이동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했다. 타 이통사 이용자보다 알뜰폰 고객에게 보조금을 더 얹어주는 판매점 프로모션을 이용해 보급형 최신 스마트폰 기기를 '차비(페이백)'를 받아 구입했다.

알뜰폰 이용자를 겨냥한 이동통신업계의 불법보조금 영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알뜰폰 업계는 '가입자 빼가기'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도 구두 경고를 내렸지만 이통사는 알뜰폰 가입자를 타깃으로 한 빼오기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를 가리키는 '알뜰번이'란 용어는 알뜰폰 가입자가 이통3사로 번호이동 하는 것을 뜻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음을 따 'ㅇㄸㅂㅇ'로 표현하기도 한다.

불법 보조금을 얹은 알뜰번이로 스마트폰을 구매했다는 후기는 이어지고 있다. 보조금을 더 받기 위해 알뜰폰 가입을 고려 중이라는 철새 이용자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기자가 지난 주말 찾은 서울의 휴대전화 집단상가에서도 알뜰폰 이용자 대상 프로모션을 빙자한 불법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 판매점은 올해 출시된 보급형 스마트폰을 차비까지 얹어 '공짜'에 주겠다고 했다.

지난달 말 알뜰폰업계가 이통사 측에 가입자 빼가기를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후에도 같은 영업 방식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는 지난달 28일 이통사들이 알뜰폰 가입자에 차별적 보조금을 지급해 가입자를 빼가고 있다며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정부에도 재발 방지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2~4주 알뜰폰에서 이통사로 번호이동한 건수는 전월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늘었다. 협회 관계자는 "이통사가 3월에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의 추가 보조금을 대리점에 지급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대리점·판매점에 구두로 보조금 지급 정책을 전달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이통사에 구두 경고하고 나섰다. 타깃 영업과 불법 보조금 살포 논란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도 시장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했다.

이통사들은 알뜰폰 가입자를 겨냥한 불법 영업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알뜰폰 가입자 관련 정책을 따로 낸 적은 없다"며 "대리점·판매점의 영업 정책을 본사가 모두 관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뜰폰업계 관계자는 "4월 성명 발표 이후에도 이통사의 알뜰폰 가입자 타깃 마케팅 사례를 발견했다"며 "영업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통사가 과태료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영업점 관리 주체가 이통사인데 이통사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되느냐"고 성토했다.

이 관계자는 "방통위의 구두 경고 후에도 알뜰폰 가입자 빼가기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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