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해외 한국 기업 유턴 못하는 이유

입력 2020-05-11 18:12
수정 2021-04-20 17:19
“공장에서 땀 흘리며 기술을 배우기보다는 편의점에서 시간제로 일하며 편하게 살려는 젊은이가 많아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이후 중소기업 제조현장에선 사람 뽑기가 훨씬 어려워졌다고 했다. 중소제조업 근로자와 편의점 직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의 시급(時給)이 같아져 젊은 인력이 공장으로 오지 않는다는 하소연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왔다가도 금세 떠납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수당 등 돈을 뿌리고 있는데 왜 힘들게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옆에 있던 사람은 한술 더 떴다. “작년에 사규에서 정년퇴직 규정을 아예 없애버렸어요.” 공장을 제대로 돌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이든 직원들한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하라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최근 한 행사장에서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이대론 한국이 제조업 강국이 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높은 인건비와 진입장벽(규제) 탓에 기업들이 국내 생산을 포기한 소재·부품·장비가 너무 많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에서 펌프식 손세정제 50만 개를 50일 안에 보내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조달하지 못했습니다. 국내엔 용기 속 세정액을 끌어올리는 소형 펌프를 생산하는 곳이 없어 중국서 수입해야 하더라고요.”

비슷한 사례가 이어졌다. “중동 바이어가 ‘중국산 제품에 불량이 많다’며 한국산 비접촉식 체온계 5000만 개를 구입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순수 한국산 제품을 구할 수 없었죠. 우리 업체들이 대부분 중국 부품을 들여다 조립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내 생산을 중단한 품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2월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공장을 멈춰 세웠던 ‘와이어링 하네스’도 그중 하나다. 자동차 전기장치에 신호를 전달하는 전선뭉치인데, 사실상 전량 중국에서 생산해 들여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특정국 한 곳에 50% 이상 수입을 의존하는 소재·부품·장비가 338개나 됐다. 국가별로는 일본 100여 개, 중국 80여 개, 미국·유럽 150여 개에 달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및 부품처럼 기술력이 못 따라가 수입하는 품목도 있지만, 인건비와 규제 탓에 국내 생산기지가 해외로 옮겨간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제조업에 허점이 많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부품의 안정적인 수급은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핵심 부품 공급이 끊기면 한국 내 반도체, 자동차 공장 등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용과 규제다. “중국서 수입해 쓰면 자체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는데, 누가 한국에서 만들려고 하겠습니까. 더구나 부품 하나 개발해 승인받기까지는 인허가 절차가 너무 까다롭습니다.” 행사장은 어느새 중소기업인들의 성토장이 돼 있었다.

기업인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베트남 등지로 생산라인을 옮겨다니지만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는 ‘중국에서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중국에서 철수하면서 금형 하나도 못 갖고 나왔어요.”

그렇다고 국내로 유턴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인력난에 높은 법인세와 상속·증여세, 경직된 노동시장, 반(反)기업정서 등이 투자 의욕을 꺾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 기업의 (국내) 유턴을 추진하고 해외 첨단산업의 유치를 통해 대한민국을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기업할 의욕을 북돋우고 여건을 조성해주지 않는다면 이런 구상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