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광화문 일대 다세대주택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 씨(36)는 4개월 째 월세를 내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올 초 이후 수입이 거의 없어서다. 그간 이 씨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0만원의 방에서 도시민박업 허가를 받아 에어비앤비를 운영해왔다. 도심에 위치한 덕에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 관광객이 꾸준히 찾아 월 평균 수익이 200만원 가량 됐지만 최근엔 거의 손님을 받지 못했다.
이 씨는 “에어비앤비를 시작한지 두달여 만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손실이 크다”며 “아직은 퇴직금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이마저 전부 소진하면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해야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신규 예약 제로 수준"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공유 숙박업 운영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는 물론 세계 최대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까지 타격을 받으면서 '고수익 투잡' 내지 '월세보다 나은 수익률'을 기대했던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 잠실의 한 에어비앤비 업체의 경우 4월 한달 간 1건의 예약 밖에 받지 못했다. 이 업체에서 호스트로 활동하는 박모 씨(43)는 “이익을 보기는 커녕 월세도 내기 어렵다”며 “한달에 절반은 채워야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예약은 거의 없고 간간히 들어오는 예약도 취소되기 일쑤”라고 푸념했다.
관광산업이 특화돼 지난해까지 에어비앤비 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던 제주에서도 운영자들의 손실이 커지고 있다. 은퇴 후 제주 서귀포시에서 부인과 함께 에어비앤비를 운영해왔던 윤모 씨(64)는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외국인 손님 신규 예약이 '제로(0)' 수준이라고 전했다.
2년 전 2000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아파트에서 빈 방 2개를 에어비앤비 숙소로 운영해왔지만 최근처럼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적은 없었다. 윤 씨는 “다른 곳에서 수익이 나올 곳이 없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진 않아 밤에 잠도 못잘 정도로 걱정이 많다”며 “최근에 제주 관광객들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관계가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95% 급감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던 지자체들의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 제주도의 경우 3월 외국인 관광객은 작년 동월 대비 97.3%나 줄었다. 3월 부산시를 방문한 외국인 방문객은 작년 같은 달의 5%에 불과했다. 중국인은 97.5%, 일본인 관광객은 98.8%나 줄었다. 지난해 한일 갈등에 따른 ‘여행 보이콧’으로 충격을 받은 데다 코로나 영향이 겹쳐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제로 수준에 가깝다는 얘기다.
◆국내 관광객 늘어도…"우리에겐 먼나라 얘기"
예약이 급감하면서 운영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본인이 소유한 집이 아닌 이상 상당수 운영자들은 임차를 해 이용객들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이라 월세 부담이 컸다. 예약률이 떨어지는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이 커지다보니 아예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에어비앤비 운영자들이 모여 있는 포털 카페 ‘에어비앤비 호스트 모임’ 등에 따르면 방이나 계정을 양도하겠다는 글이 여러 건 올라오고 있다. 서울 명동 인근 다세대주택를 양도한다는 한 운영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월세가 감당이 안 돼 작년까지 잘 운영하던 주택을 정리하려 내놨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각종 규제로 내국인 대상의 영업이 불가능한 점 때문에 호스트들의 피해는 더 커지는 중이다. 에어비앤비 운영자들은 정부의 여행업계나 자영업자에 대한 각종 코로나19 피해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이 다소 줄면서 국내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고 있지만 에어비앤비 업체들에게는 먼나라 이야기다. 현행 관광진흥법상으로는 에어비앤비 호스트 등은 도시민박업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외국인만을 손님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어서다.
제주 중문관광단지가 있는 서귀포시 예래동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조모 씨(29)는 “외국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제주도에 국내 관광객이 는다는 데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내국인 손님을 받는 것은 불법”이라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입이 줄었던 식당과 카페에서는 황금연휴 동안 손님이 줄지어 방문하면서 한시름 놨다는데 공유 숙박업체에서 관광객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막혀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숙소 운영자 뿐만 아니라 관리자나 청소 아주머니들도 일감이 줄어 생계가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온다”고 전했다.
◆정부 대책 나온다지만…본사도 25% 감원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 중이다. 지난달 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연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는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 방안’을 논의하면서 내국인도 도심에서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숙박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았다. 정부는 안전·의무사항 등을 준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국인 민박을 허용하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올해 발의할 예정이다.
한편 코로나19로 공유경제가 위축되면서 에어비앤비 본사도 직원의 25%를 감원하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현지 시각)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올해 매출은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라며 "전 세계 7500명 직원 가운데 1900명을 이르면 다음주 정리 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체스키 CEO는 또 "회사는 2가지 힘든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며 "정확히 언제 여행이 다시 시작될지 알 수 없고, 재개되더라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집에서 더 가깝고 안전하며, 가격이 적당한 숙소를 찾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어비앤비는 차기 수입 사업으로 삼으려했던 고품격 서비스인 ‘호텔스 앤 럭스’도 일단 축소한다. 올해로 예정됐던 에어비앤비의 기업공개(IPO)도 불투명해졌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