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축소와 분배 개선’을 주장하는 학현학파 출신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라인을 ‘접수’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난달 학현학파 출신인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학현학파의 활동 반경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학현학파는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아호인 학현(學峴)에서 비롯했다. 변 교수의 지도를 받은 서울대 경제학과 석·박사 제자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주로 소득불평등 축소와 분배에 초점을 두고 연구해왔으며 공직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이에 비해 학현학파와 대척점에서 시장경제 담론을 주도하는 서강학파 출신 인사들은 정책라인에서 퇴조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선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등 치열한 논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1일 주 교수를 금통위원으로 임명했다.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신용정책을 운용하는 기구다. 주 교수는 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 설계 과정에도 적잖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현학파 출신이 금통위원 자리에 오른 것은 2002~2006년 금통위원으로 재직한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후 처음이다.
학현학파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경제정책 라인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종규 전 청와대 재정기획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설계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신욱 통계청장, 박복영 청와대 경제보좌관,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등도 학현학파 멤버로 꼽히는 인물이다.
학현학파의 건너편에 있는 경제학자들이 서강학파다. 작고한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서강학파의 거두다. 서강대 교수 출신이 주를 이루며 성장과 시장경제를 강조해왔다.
서강학파 출신도 이 정부 초기엔 일부가 공직에 참여했다. 현재 서강학파의 좌장 격으로 평가받는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현 정부와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학계에서 서강학파는 학현학파와 치열한 학문적 논쟁을 펼치고 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좋은 예다. 그는 지난해 5월 소주성의 토대가 되는 이론이 잘못된 통계 해석에서 비롯됐다는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의 임금상승률이 경제 성장 속도에 못 미친다’는 소주성 이론의 핵심 토대는 통계 해석 오류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소주성 이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경제학계 일각에선 경제정책 라인이 학현학파 일색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경제정책에서의 오류가 걸러지지 않는다”며 “지금은 분배론자 일색이어서 나중에 큰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