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위원장직을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당 재건을 위한 확실한 기간과 권한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은 22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통합당 소속 현역 의원과 당선자 142명에게 전화를 돌려 연락이 되지 않은 2명을 제외한 140명으로부터 의견을 들었다”며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응답자 다수로 나온 만큼 그 방향으로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통합당은 전날 현역 의원과 당선자 전원을 대상으로 ‘김종인 비대위’로의 전환과 조기 전당대회 중 바람직한 방향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 결과 ‘김종인 비대위’가 압도적인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찬성의 뜻을 표한 응답자가 반대한 인원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당은 다음주 초 전국위원회 소집 등 비대위 전환에 필요한 실무적인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 전 위원장이 ‘무기한 전권 비대위’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그는 이날 한 라디오에서 “전당대회를 7~8월에 하겠다는 전제가 붙으면 나한테 와서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얘기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당헌·당규상 전당대회까지만 유지되는 ‘관리형 비대위’라면 맡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선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올해 말까지는 당을 운영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전 위원장은 “국가가 비상사태를 맞아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 헌법도 중지되는 것”이라며 “당을 추스를 수 있는 기간은 일을 해봐야 안다”고 했다.
심 권한대행은 김 전 위원장이 전권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이날 최고위에선 비대위원장의 권한과 임기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김 전 위원장이 요구한 ‘전권’에 대해 당내 반발이 클 경우 비대위 전환 자체가 어그러질 가능성도 있다. 3선인 김영우 의원은 “전권을 갖는 비대위원장이라니 조선 시대도 아니고 비민주적 발상이고 창피한 노릇”이라고 했다. ‘전권 비대위’에 반대 입장을 표시해온 조경태 의원은 “(설문에서 김종인 비대위에 찬성한 비율이) 과반이 안 됐다”며 “비대위 체제를 길게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비대위 전환 뒤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을 둘러싸고 당내 파열음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5선에 성공한 정진석 통합당 의원은 이날 “미래한국당 당선자 중 ‘왜 빨리 통합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며 합당 논의에 불을 지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도 “한국당과의 즉각적인 합당을 촉구한다”고 했다. 반면 김 전 위원장은 “빨리 합친다고 특별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며 한국당이 독자 위성정당으로 남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