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에 신용강등까지…재점화하는 '신흥국 위기론'

입력 2020-04-20 11:02
수정 2020-04-20 11:04
[04월 20일(11:02) '모바일한경'에 게재된 기사입니다]모바일한경 기사 더보기 ▶



(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신흥국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각종 시장 지표가 뒷받침하는 모습입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신흥국의 외국인 자본 이탈 규모가 역대 최대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0일 이후 신흥국에서 유출된 자금 규모만 980억달러에 달합니다. 한화로 약 119조4400억원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보면 3배 이상 많은 규모랍니다.

또 이 기간 신흥국의 주가지수는 22.8%, 통화가치는 12.7% 하락했습니다. 신흥국 국채와 미 국채 간 수익률 격차도 계속 확대하고 있죠.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강화하고 있는 탓입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선진국의 수요 위축과 국제유가 급락 등 대외 충격이 신흥국의 다양한 내부 취약 요인을 노출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신흥국 위기를 증폭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일단 재정 건전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신흥국의 정부 부채는 10년 전에 비해 2.3배 늘었습니다. 선진국은 1.4배 증가하는 동안에 말이죠. 지난해 말 기준 신흥국의 정부 부채는 총 16조7000억달러입니다.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최근 5년 간 증가 폭은 직전 5년 대비 3배에 이릅니다. 코로나19 이후 영세기업에 대한 피해 보전과 저소득층 지원, 가계 소비 진작 등을 위해 각국이 재정지출 확대에 나서면서 중기적으로도 공공부채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신흥국 전반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확대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국가별로는 사우디아라비아(-8.1%), 남아프리카공화국(-7.7%), 이집트(-7.3%), 브라질(-6.2%) 등이 두드러질 전망입니다. 최근 85여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비상 자금 지원을 요청했는데, 2008년의 2배 수준이랍니다.

대외 부문의 취약성도 코로나19로 부각될 수 있습니다. 신흥국들이 상품과 서비스 수출 감소로 경상수지 악화에 직면한 가운데 외화부채 만기는 올해부터 2020년에 집중돼 있거든요.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각국이 봉쇄 조치에 나서고 있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의 대외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죠. 신흥국의 외화부채는 10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상황입니다. 이 중 앞으로 3년 간 만기가 예정된 달러화 표시 부채가 전체의 55%에 육박합니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6301억달러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외환보유액 대비 비율로 보면 터키와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말레이시아 등이 취약합니다. 기업 신용위험도 문제입니다. 관광이나 물류 등 코로나19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업종은 물론 자동차 등 제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고 있거든요.

국제금융센터는 신흥국의 한계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한 재무구조 악화로 각국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연이어 떨어지고 있습니다. 신용등급 평가 지표 중 하나인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은 중국(6.2배), 사우디아라비아(4.6배), 인도(3.8배), 태국(3.5배), 인도네시아(3.4배), 폴란드(3.3배) 등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원자재 수급이 불안한 것도 신흥국엔 큰 위험 요인입니다. 세계 최대 원자재 소비국인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2%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유가 외에도 곡물, 금속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어려움은 늘어나고 있죠.

사실 올 초만 해도 전 세계 GDP의 약 60%를 차지하는 신흥국 경제가 반등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할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코로나19 충격이 지난 20~30년간 겪었던 어떤 위기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할 정도입니다.

남경옥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24개 신흥국의 대내외 건전성 지표를 종합해본 결과, 아시아와 중동은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중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이 대체로 취약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약성이 확대되면 전반적인 신흥국 경제의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끝)/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