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임금동결-고용보장 바꾸자"

입력 2020-04-17 17:33
수정 2020-10-15 18:45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올해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임금을 올려달라고 나설 수 없다는 취지다.

산업계에서는 강성노조의 대명사였던 현대차 노조가 달라졌다는 평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전 국민 해고금지 요구를 지원사격했다는 분석이 동시에 나온다. 일각에서는 노동계가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한계기업 정리 등 산업 구조조정까지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대차 노조는 17일 발간한 소식지를 통해 “코로나19로 세계 노동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고, 현대차도 수출시장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독일 노사의 위기협약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이 해법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며 “한국 노사정은 ‘일자리 지키기’를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 노조가 우회적으로 올해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폭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해석이 나온다. 회사 측은 노조의 공식 제안이 오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현대차 노조가 선제적으로 임금을 올리지 말자고 제안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임금이 동결된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 마지막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산업이 그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올 1분기(1~3월) 국내 자동차 생산대수는 80만9975대로 전년 동기(95만7402대) 대비 15.4% 줄었다. 2분기 이후는 상황이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이 마비되면서 수출길이 막혔기 때문이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민주노총·현대차 노조, 동시에 고용보장 요구
임금인상 포기하고 '해고 저지'에 집중

강성 노동운동의 대명사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달라진 걸까. 현대차 노조의 17일 ‘임금동결-고용유지’ 제안을 놓고 업계에선 갖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지금까지 현대차 노조는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때도 “엄살 부리지 말라”며 임금 인상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일단 현대차 일각에선 지난 1월 취임한 이상수 위원장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용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위원장은 취임 직후 “무분별한 파업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에는 노조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16일엔 공장 간 물량 전환 및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혼류 생산’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노조가 관성적인 투쟁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조업 축소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를 막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감절벽’이 불가피해 국내 공장이 다시 가동 중단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어서 임금동결을 무기로 이를 막겠다는 의미다. 기아자동차는 이미 국내 공장 세 곳을 1주일씩 가동 중단하자고 노조에 제안했다. 인도에서 수입하는 부품의 재고가 없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셀토스의 일부 모델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원은 이미 고용이 보장돼 있다”며 “일감 및 수당 규모를 유지해달라는 게 집행부의 속내”라고 말했다.

기업의 고용유지를 요구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제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7일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만나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과 해고 금지를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의 지원을 받은 기업은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차 노조는 민주노총에 속해 있다.

경제계에서는 노동계의 고용유지 요구가 산업 구조조정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와 상관없이 경쟁력을 상실한 부실기업까지 연명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가 실업대란을 막아야 한다며 ‘좀비기업’에 대한 지원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한국 제조업이 다시 도약하려면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지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한계기업을 늘리게 되면 제조업이 또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병욱/강진규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