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發 충격 본격화…3월 법인 파산 53% 급증

입력 2020-04-16 17:40
수정 2020-10-15 18:2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파장이 본격화한 지난달 빚을 갚지 못해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 법인이 50% 이상 급증했다. 개인이 파산으로 내몰린 사례도 크게 늘었다. 기업 도산이 실업을 낳고 경제위기와 금융 부실을 부르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대법원이 채이배 민생당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회생법원을 비롯한 전국 14개 법원에 들어온 법인 파산 신청은 101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3월보다 53% 늘어난 것으로 매년 3월 기준으로는 사상 최다 기록이다. 전달(2월)에 비해선 26.2% 증가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엄습하는 D의 공포…"코로나發 기업 줄파산 이제 시작일 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산업 현장을 강타하면서 ‘D(default·채무 불이행)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 파산으로 채무 불이행이 급증하면 금융 부실이 쌓여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민간 연구소 연구위원은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던 코로나19가 기업과 개인의 경제적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도산 악순환’ 조짐

법인의 파산 신청은 지난달 101건으로 2월(80건)에 비해 가파르게 늘었다. 작년 3월에 비해선 53% 급증한 수치다. 이완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임금 체불이 없던 법인들이 코로나19로 갑작스레 어려워져 파산 신청을 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악화된 기업 환경이란 ‘불’에 코로나19 사태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지적이다. 한 파산담당 부장판사는 “파산 신청을 한 중소기업을 분석해보면 대다수가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 인상이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의 휴·폐업은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가계의 위기로 이어졌다. 지난달 개인 파산 신청은 4274건에 달했다. 전월 대비 15.0%, 전년 같은 달 대비 9.6% 증가했다. 코로나19 충격이 가장 컸던 대구·경북 지역을 관할하는 대구지방법원의 개인 파산 접수 건수는 340건으로 전월대비 증가율(30.2%)이 전국 평균치의 두배에 달했다. 전남·광주를 비롯해 영세한 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인천남동공단과 반월·시화공단이 속한 관할 법원(인천지법 수원지법)의 개인 파산 신청 역시 증가했다. 최근 업황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철강·발전·기계업종 협력업체가 많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증가폭도 컸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대구지법은 지난달 23일까지 휴정했고, 이후에도 재판 횟수를 줄였다”며 “이런 가운데서도 파산 신청이 급증했다는 건 시장의 회생·파산 수요가 실제로는 더 많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파산으로 가기 전 법원에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기업과 개인도 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도산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회생 신청 건수는 전달에 비해 법인이 45%, 개인은 6% 증가했다.

기업과 개인의 파산 사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도산 전문가는 “위기를 맞은 회사가 파산을 신청하기까지는 통상 4~5개월이 걸린다”며 “이대로 가면 올 7~8월에 줄도산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가계·기업 동반 부실의 늪

기업의 파산은 필연적으로 대량 실업을 낳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15만6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만1000명(24.8%) 늘었다. 3월 기준으로는 2009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도 전년 동월 대비 40.4% 급증한 8982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근 소상공인연합회의 설문 결과 소상공인의 82%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소상공인 3명 중 1명(33.6%)은 최근 휴·폐업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했다. 줄파산 사태는 ‘예고된 재앙’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올 하반기부터 코로나19발 빚의 악순환이 각종 경제지표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공급하고 있는 ‘코로나 대출’이 부실 뇌관으로 돌아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국내 자영업자는 50명 중 1명꼴로 이른바 ‘신용불량’ 상태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 대출(개인사업자 대출) 이용자는 209만5166명이다. 이 중 3만5806명이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901조4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18조7000억원 불어났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9년 6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이 기간 중소기업도 대출을 8조원 늘렸다. 이 역시 사상 최대폭이다.

한 파산 전문가는 “가계와 기업의 대량 파산은 디폴트 사태를 의미한다”며 “디폴트 사태는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남정민/안대규/임현우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