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문순C 감자'가 필요한 이유

입력 2020-03-22 16:54
수정 2020-03-23 00:43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유통업과 외식업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한 감자 판촉을 위해 손잡았다. 버려지는 감자의 판로를 열어달라는 백 대표의 요청을 정 부회장이 받아들였다. 껍질을 깎기 힘들어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못난이 감자 30t을 이마트 매장에서 이틀 만에 다 팔았다. 감자 900g의 가격은 780원.

최문순 강원지사는 지난 11일부터 감자(10㎏)를 배송비 포함 5000원에 팔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 강원도농수특산물진품센터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강원마트에 물건을 띄우면 1분 만에 매진이 된다. ‘마스크보다 더 사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유명 가수 콘서트 티켓 구하는 것보다 감자 사는 게 더 힘들다는 뜻의 ‘포케팅’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업계 관계자는 “도지사가 직접 SNS 홍보에 나서고 강원도청이 도비로 배송·포장비와 인력을 전폭 지원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런 사례는 요즘 초·중·고교 신학기 개학이 한 달 넘게 미뤄지면서 갈 곳 잃은 급식용 농산물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누가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판매 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아도는 급식용 농산물을 팔겠다고 선뜻 나서는 곳은 많지 않다. 농협 하나로마트를 비롯해 남도장터(전라남도), 사이소(경상북도) 등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온라인몰에서 팔거나 지역별 오프라인 장터에서 파는 정도다. 할인율은 20~30% 정도다.

정작 수요가 많은 대도시 소비자에게 친숙한 채널인 쿠팡, G마켓, 이마트, 롯데마트 등은 조용하다. 이들이 급식용 상품 판매를 주저하는 이유는 인력난과 상품성이다. 식자재 형태로 된 농산물을 낱개 단위로 재포장해 상품화해야 하는데 포장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1번가가 e커머스 가운데 처음으로 도전했다. 18일 ‘학교급식용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팔았다. 상추 시금치 오이 등 1㎏ 중량의 채소 세트를 1만5000원에 내놨다. 3000세트밖에 준비하지 못해 3시간 만에 완판됐다. 오는 25일 이후에나 2차 판매가 가능할 전망이다.

이마트는 바나나 파인애플 등 일부 급식용 품목을 가져와 판매하고 있다. 오전 특가 방식으로 기존가 대비 50% 싸게 판매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아직 소량이어서 특가 상품이 급식용 식자재였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인지하지는 못하는 수준”이라며 “마트에서 판매하려면 상품 크기와 규격이 일정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급식 농가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농가 지자체 유통회사 등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할 때다. 농가가 살아야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식자재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