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65세 이상 노인 중 25%가 낙상사고를 경험하고 연간 12만 명이 뇌 손상·골절 등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이 중 25%가 1년 안에 세상을 떠난다. 낙상사고는 노인 사고사망 원인 중 교통사고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사회적 기업 해피에이징은 노인들의 낙상사고를 예방하는 안전용품이 많지 않다는 데 주목했다. 8일 서울 목동 양천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에서 만난 권경혁 해피에이징 대표는 “낙상사고로 인한 치료 및 간병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연간 1조1000억원에 달한다”며 “낙상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품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으로 안전손잡이 업그레이드
국내 의료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 낙상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집(53.7%), 그 안에서도 화장실(60%)이다. 대부분 화장실을 습식으로 사용해 물기가 남아 있는 데다 바닥타일이 미끄럽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들이 용변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급히 들어가다 넘어지면 요추 골절, 고관절 골절, 뇌손상 등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권경혁 해피에이징 대표는 안전손잡이를 화장실 변기 옆에 설치해 앉고 일어날 때 잡을 수 있게 했다. 몸체 표면은 실리콘으로 제작했다. 물 묻은 손으로 잡아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기존 알루미늄 재질에 비해 차갑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몸체 끝에는 야광스티커를 부착해 야간에 잘 찾을 수 있게 했다. 화장실 바닥과 샤워부스 아래 해피에이징 미끄럼방지 매트를 함께 깔면 화장실 낙상사고 확률을 더 낮출 수 있다.
권 대표는 어머니를 잃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2014년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골반골절을 입고 거동이 불편해졌는데, 이 때문인지 6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며 “‘화장실에 손잡이가 있었더라면 낙상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다니던 회사를 나와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다”고 말했다. 2015년 소셜벤처경진대회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 5월 해피에이징을 설립했다.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된 뒤 3년 만인 지난해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 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신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다.
지자체 노인복지 예산 활용
그는 노인 낙상사고 예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노인복지 예산을 활용해 각 구청 노인복지과에 등록된 독거노인의 집에 안전손잡이 두 개와 미끄럼방지 매트 한 개를 설치하는 사업을 벌였다. 2018년 서울 광진·성동구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18년부터 2년간 제주 서귀포시 표선·성산·남원읍 등 700가구에도 이를 설치했다. 권 대표는 “사용자들은 이제 안전손잡이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할 만큼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목포, 부산을 비롯해 서울 양천·강동구로도 사업을 확대했다.
안전손잡이는 개당 가격이 5만2900원(설치비 포함)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보험 대상자에게 제공하는 지원을 받으면 자기부담금 15%만 내면 된다. 약 3만원에 4개를 설치할 수 있다. 안전손잡이 매출은 2018년 1억원에서 지난해 2억8000만원으로 성장했고, 올해엔 매출 5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해피에이징은 노인을 위한 ‘안전한 집 만들기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안전손잡이, 미끄럼방지 매트, 점·소등 리모컨, 미끄럼방지 양말, 보행차, 가스 자동차단기, 응급알림서비스, 모서리 보호대 등 노인 주거 안전용품 여덟 가지를 집안에 모두 갖추는 프로젝트다. 권 대표는 “현재 국내 노인용품 시장 규모는 약 500억원대로 추산되는데 패키지 상품까지 포함하면 2000억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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