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코로나가 흔든 '규제 대못' 뽑아라

입력 2020-03-05 18:46
수정 2020-03-06 00:27
신기술이 자리를 잡으려면 과학자와 기업인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밟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 가트너가 개발한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은 신기술에 대한 사회적 기대수준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신기술이 나타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사회적 기대는 급격히 상승한다. 기대가 너무 커지면 일정 기간 조정이 불가피하다. 그 후 신기술을 재발견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사회적 기대는 마침내 실현돼 간다.

코로나19가 닥치면서 누구도 말하지 못하던 ‘규제 대못’이 흔들리고 있다. 교육부가 코로나 종식 때까지 등교에 의한 집합수업을 하지 말라면서 주목받고 있는 원격수업부터 그렇다. 교육부는 20% 이내로 묶어놨던, 학기 개설 총 교과목 학점 중 원격수업 학점 제한을 올해 1학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치를 내놨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 교육부가 일반대학에 내려보낸 ‘원격수업 운영 기준’은 원격수업 정의, 적용 범위, 운영 규정, 교과목 제한, 평가, 점검 및 위반시 제재 등 세세한 지침으로 가득차 있었다. 대학에 원격수업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대학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안 하던 원격수업을 갑자기 해야 하니 당연하다. 20% 이내 원격수업 제한 해제가 이번 학기에 한정돼 본격적인 투자를 할 수도 없다. 교육부가 처음부터 원격수업을 대학 자율에 맡겼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해외 대학들은 온라인 강의를 전면 도입하고 콘텐츠까지 수출한다. 지금이라도 교육부가 원격수업 제한을 아예 철폐한다고 선언하면 교육혁명·대학개혁의 방아쇠가 될지 누가 아는가.

정부 여당이 거론 자체를 꺼리던 원격의료도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보건복지부가 가벼운 감기 증상이 있는 환자는 의사 판단에 따라 병원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상담과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의사협회는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이유로 환자의 안전 문제를 제기해왔다. 의료진 및 병원 내 감염을 차단하고 대구에서 입원도 하지 못한 수많은 확진자를 모니터링하려면 화상진료까지 동원해야 할 판이다.

복지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격의료를 허용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불법인 원격의료가 위기 때 잠시 풀린다고 제대로 활용될 리 없다. 한의사협회는 찬성하고 의협은 반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일찍부터 원격의료를 의사나 병원 자율에 맡겼다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혁신적인 방식이, 뛰어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밖에서는 모바일 헬스케어가 펄펄 날고 있는데 우리는 왜 스스로 기회를 봉쇄하는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19로 생겨난 사회적 수요와 충돌하는 규제는 금융에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업무용 망과 개인용 망을 완전히 분리해 사용해야 한다는 ‘망 분리 원칙’의 예외를 허용했다. 금융회사 직원들이 코로나19로 직장이 폐쇄돼 재택근무를 해야 하면 외부 접속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이 버티고 있어 금융위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는 망 분리 규제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획일적인 망 분리 규제는 클라우드, 핀테크 등의 활성화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업계는 규제 완화에 기대를 걸지만 예외 허용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다. 해킹에 대비하는 보안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금융위는 총대를 메겠다는 의지가 없다.

기업에 왜 혁신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도산’, ‘도미노 붕괴’, ‘예상치 못한 충격’, ‘단절’, ‘퇴보’, ‘고립’ 등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많이 나온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피할 수 없는 혁신을 규제로 막겠다는 것은 어리석다. 코로나19는 빨리 극복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