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어(코리안투어) 통산 3승을 수확한 이태희(36)는 지난 22일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WGC)멕시코 대회를 마치자마자 중동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만에서 열리는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오만오픈(총상금 175만달러)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한국~멕시코~오만으로 이어지는 2만9000㎞의 지난한 여정은 ‘직업골퍼’인 그로선 감수해야 할 선택. 하지만 올 시즌은 대회 하나하나가 어느 해보다 각별하다. 언제, 어디에서 출전 기회를 잡을지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국내 투어는 쪼그라든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친 탓이다. 이태희 측은 “출전할 대회가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프리카든 어디든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만 대회와 같은 기간 열리는 뉴질랜드오픈(총상금 140만 뉴질랜드달러)에도 장이근(27), 김비오(30), 김주형(18) 등 한국 선수 11명이 출전했다. 개최국 뉴질랜드와 아시안투어 활동이 잦은 일본을 제외하곤 가장 많은 외국인 선수 규모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출전을 머뭇거리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 때문이지 국내 투어에는 두 개 이상의 투어를 뛸 수 있는 ‘더블시드’ 자격을 확보한 겸업 선수가 30명에 달한다. 투어 시드가 세 개 이상인 ‘트리플시드’를 들고 있는 선수도 다섯 명이다. “투잡, 스리잡을 뛰지 않으면 훈련비와 생활비를 벌기 힘들다”는 게 프로들의 전언이다.
국내투어 시드와 유럽투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초청권까지 들고 있는 ‘챔피언급’ 선수는 그나마 형편이 낫다. 코리안 투어 시드권자의 80%가량은 국내 대회가 열려야만 ‘밥벌이’를 할 수 있다. 4월 말 열릴 개막전(DB손해보험프로미오픈)에 이상이 생기기라도 하면 거의 반 년을 쉬어야 한다. 지난해 코리안투어는 11월 최종전이 취소되는 바람에 10월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투어는 다음달 17일 2020시즌 일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올해 임기를 시작한 구자철 신임 회장은 “올해 15개, 내년엔 20개 이상의 대회를 마련해 투어를 부활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신규 대회를 열겠다고 선뜻 나서는 후원사는 아직 없다. 코리안투어는 2008년 20개로 정점을 찍은 뒤 대회 수가 줄어 15개까지 떨어졌다.
투어 관계자는 “의욕을 가지고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복병이 나타났다”며 걱정하고 있다.
‘18세 소년 골퍼’ 김주형은 뉴질랜드오픈에서 이틀간 11언더파를 몰아쳐 단독 선두에 올랐다. 첫날 7언더파를 적어낸 후 둘쨋날에도 4타를 또 덜어내 2위를 1타 차로 밀어냈다. 김주형은 지난해 5월 프로로 전향한 뒤 11월 아시안투어 파나소닉 오픈 인디아에서 17세 149일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천재골퍼다.
남자 대회에 처음 도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챔프 페르닐가 린드버그(스웨덴)는 이틀간 10오버파를 쳐 147위로 커트탈락했다. 그는 “내 밑으로 남자 한 명을 두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 대회에는 총 156명이 출전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