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염 본격화…'여행력' 따지다가 전국민이 '잠재적 환자' 됐다

입력 2020-02-19 16:23
수정 2020-02-20 09:38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에 지역사회 감염으로 확대되면서 일선 의료기관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해외를 다녀온 사람만 선별해 코로나19 검사를 했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모든 환자가 잠재적 위험환자가 됐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의심 환자는 우선 보건소로 보내고 민간 병원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의료체계 개편이 시급하다고 했다.

감기 환자에게 음성 확인증 요구하기도

“며칠 전에도 감기에 걸린 아이와 엄마가 학원에 내야 한다며 코로나19 검사 확인증을 끊어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검사하기 어렵다고 돌려보냈지만 지역사회 감염이 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입니다.”

19일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국내 한 중소병원 의료진의 말이다. 그는 “직장이나 학원 등에서 확인증 발급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며 “집에서 자가격리하다가 많이 아프면 꼭 필요할 때 병원을 찾도록 안내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를 다녀온 직원이나 중국인 직원에게 직장 등에서 확인증을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의료진은 토로했다. 국내 코로나19 환자 중 3명이 무증상 감염으로 확인되면서다. 하지만 증상이 없는데도 병원을 찾았다가 환자를 만나면 추가 감염될 위험이 높다. 방역당국 등에서 가급적 병원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는 이유다.

꼭 치료받아야 할 환자 치료 미루기도

의사 혼자 운영하는 동네의원, 감염 인력을 따로 두기 어려운 요양병원 등에서는 호흡기 환자가 찾아왔을 때 대응방법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의 동네의원 의사는 “환자가 찾아와 의사가 격리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 동네의원들은 호흡기 환자가 오면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라며 “폐렴환자 입원이 많은 요양병원들도 고민이 클 것”이라고 했다.

반면 꼭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치료를 미루는 일은 늘었다. 서울 동작구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한 의사는 “예약을 취소하거나 예약한 날짜에 오지 않는 환자 비율이 평소보다 20% 정도 늘었다”며 “당뇨 등 만성질환자는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데 이들이 병원을 찾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환자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병원들도 홍역을 치르기는 마찬가지다. 감염 위험이 없는데도 환자가 찾지 않아 매출이 뚝 떨어졌다. 25번·26번·27번 환자가 선별진료소를 찾았던 경기 시흥 신천연합병원의 노경선 원장은 “내부적으로 강화한 선별진료소 지침을 운영하고 있어 환자가 발생했지만 격리 대상이 한 명도 없었다”며 “선별진료소가 있으면 병원 안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들어올 수 없어 감염 위험이 없는데도 매출이 50% 줄었다”고 했다.

이날 보건당국은 의료기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 진료비를 당겨서 지급하기로 했다. 지금은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진료비를 청구하면 22일 안에 지급하지만 앞으로는 10일 안에 90%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감염시작, 최소화 고민해야”

의료계에서는 지역사회 감염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폐렴 환자 전수조사보다 중요한 것이 선제 격리”라며 “이 때문에 병원에서 불가피하게 입게 되는 경영상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했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지금은 환자가 나오면 무조건 48시간 동안 응급실을 폐쇄하고 있는데 이랬다간 응급실 이용을 못해 제2, 제3의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며 “240곳의 보건소를 스크리닝센터로 바꿔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이 의뢰한 환자 검체 분석 등을 하면 검사 병목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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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임락근/박진우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