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한진칼 주총, 해외 의결권 자문사는 어떻게 판단할까

입력 2020-02-11 08:22
수정 2020-02-11 17:33
≪이 기사는 02월10일(10:2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내달 27일 열리는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 한진가(家) 구성원 간의 승부가 예고된 가운데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판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가 어떤 방향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외국인 및 기관투자자의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의결권 자문사들은 주요 회사의 주주총회 안건을 먼저 분석해 찬성하는 게 좋을지, 반대하는 게 좋을지 기관투자자에게 권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수년새 주요 금융그룹 및 대기업의 주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작년 한진칼 주총에서도 KCGI는 다양한 주주제안을 내놓았으나 ISS 등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KCGI의 7개 제안에 대해 모두 반대 권고했다. 이어 주주제안을 내놓을 자격에 관한 법정 소송에서 KCGI 측이 패소해서 주주제안 안건 상정 자체가 무산됐다. 당시 의결권 자문사들은 이 주총에서 한진칼이 제안한 감사위원회의 설치, 이사 보수한도 등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다만 회사 측의 제안 가운데 석태수 한진칼 대표의 사내이사 선임에 관해서는 조양호 당시 회장에 대한 견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이유로 반대 권고했다.

올해 한진칼 주총의 가장 핵심 이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여부다. 총 6명의 이사회 구성원 중 조 회장과 이석우 법무법인 두레 변호사 총 2명의 임기가 이번에 만료된다. 한진칼은 조 회장의 연임안을, 조현아 전 부사장과 KCGI 측은 조 회장 대신 다른 전문경영인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을 올릴 예정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이 물색한 전문경영인에는 중량감 있는 전직 관료가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의 연임 안에 대해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이들의 판단 기준을 추정할 수는 있다.

국내 사례들을 살펴보면, ISS 등은 '유죄 판결'을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다. 2016년 횡령 등으로 형사처벌 전력이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주)의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는 데에 반대 권고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한 감시와 견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존 이사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2015년 3월 (주)CJ 주총에서 ISS 등은 손경식 회장 등 3명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복귀를 막지 못해 이사로서 감시와 견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반대를 권고했다.



반면 회사 측이 이사 선임을 제안했는데, 해당 인물이 아직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고 단순히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경우라면 대체로 찬성 권고를 선택한다. 2018년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3연임 건이나, 백복인 KT&G 사장의 연임 건에 대해 찬성 권고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회사 측이 아닌 곳에서 새로이 제안하는 내용이 회사 측 의견과 배치될 경우 대체로 반대를 권고하는 편이다. KB금융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를 선임하는 안건에 대해 반대(2018년) 권고한 사례 등이나 작년 KCGI의 한진칼 이사 및 감사 제안에 반대를 권고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의결권 자문사들은 사업에 관한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현 경영진이 더 판단을 잘 할 것이라는 이유로 대체로 찬성 권고 하지만, 사업에 관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중대한 합병 등에 대해서는 주주가치를 이유로 반대 권고하기도 한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권고,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 합병에 반대 권고한 것이 그 예다.

이와 관련해 전직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ISS 등의 판단 기준은 배임이나 횡령 등이 문제가 되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해당 경영자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지금까지 회사에 대한 배임이나 횡령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없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찬성'을 권고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이 관계자는 "부정입학 등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논란거리가 될 수는 있지만 의결권 자문사에서 판단하는 불법적인 행위에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물론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양호 전 회장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한진칼 주주 제안은 오는 14일까지 마무리된다. 양측은 이사 선임 안건 이외에도 주주친화적인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회사 운영의 효율성 제고 방안 등을 들고 나와 주총에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