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56곳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예고했다. 보유 지분 5% 이상인 상장사 중 규모가 큰 56개사의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 공시한 것이다. 일반투자는 ‘경영참여’ 목적보다는 낮지만 배당 증액, 지배구조 개선, 이사 해임 요구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한 유형이다.
국민연금이 공개한 56개사에는 5대 그룹 주요 계열사는 물론 네이버 대한항공 셀트리온 신한지주 에쓰오일 이마트 등 업종 대표기업들이 총망라돼 있다. 말이 좋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이지, 정부 눈 밖에 난 기업들을 ‘요주의 기업’으로 점찍어 경영에 얼마든지 간섭할 길이 열렸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가 313개에 달해 경영 개입 대상이 될 기업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게 뻔하다.
국민이 주인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자제돼야 하는 게 원칙이다. 행사하더라도 철저히 수익성 제고에만 국한돼야지 추호도 다른 의도가 끼어들어선 안 된다. 국민 노후를 책임져야 할 공적 연금을 정부가 좌지우지하고, 민간기업 압박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은 선진국에선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가뜩이나 저출산·고령화로 국민연금의 고갈 예상 시점이 앞당겨지고, 수익률도 뚝 떨어진 마당이다. 당장 급한 게 연금 개혁과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선인데 이에 대해 정부는 일언반구도 없다.
더구나 지금이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 개입을 확대할 궁리나 하고 있을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경기 둔화, 반(反)기업 정책에다 ‘우한 쇼크’까지 겹쳐 기업들은 사면초가인데, 국민연금 눈치까지 봐야 한다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은 사활을 걸고 악전고투 중인데 자꾸 연기금을 동원해 간섭하려는 의도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은 이제라도 즉각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