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4일 사이 중국 후베이성을 방문했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은 4일부터 한국 입국이 전면 금지된다. 정부는 또 한국인의 중국 관광 금지와 중국인에 대한 관광 목적의 단기 비자 발급 중단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대응 확대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는 중국 위험 지역에서의 입국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후베이성을 방문한 한국인 역시 입국 후 14일간 자가 격리한다.
정부는 이날 오후 5시30분 중국인에 대한 관광 목적 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가 두 시간 뒤 전면 중단을 ‘중단 검토’로 수정한다고 밝혀 혼란을 불렀다. 정부는 중국을 오가는 항공기와 선박도 축소할 계획이다. 중국인이 비자 없이 제주도에 입국할 수 있는 무사증 입국도 일시 중단한다. 또 중국 전역의 여행경보를 ‘여행 자제’ 단계에서 ‘철수 권고’로 상향 발령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정부 모니터링 아래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일상 접촉자는 밀접 접촉자와 마찬가지로 자가 격리한다. 유치원, 학교 등의 종사자 중 최근 중국을 방문한 사람도 14일간 업무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후베이성 방문자만 제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방역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하고 “지역사회 감염 확산 저지를 위해 지금부터의 대응이 중요하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모든 자원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이미 중국인의 입국을 봉쇄하는 조치를 내렸다. 일본은 지난 1일부터 최근 2주 사이 후베이성에 체류한 외국인과 후베이성 발행 여권을 가진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미국도 2일 오후 5시(현지시간)부터 최근 2주 새 중국을 다녀온 외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을 잠정 금지하기로 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중국發 입국 금지'도 후베이성 한정…자진신고 안하면 알 길 없어
정부가 2일 발표한 중국 후베이성 체류 외국인의 입국 금지 결정이 또다시 뒷북대책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국내 확산을 막기 위한 강경 조치라는 설명과 달리 실효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한·중 관계를 고려하는 사이 적절한 정책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과 함께 중국 정부가 후베이성에 대한 봉쇄령을 내린 지 2주가 지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후베이성 체류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명확하지 않아 구멍 뚫린 대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외교마찰 고려해 결정 늦춰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확대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중국 위험 지역에서의 입국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4일 0시부터 중국 후베이성을 14일 이내 방문했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의 한국 입국이 전면 금지된다. 제주도 무사증(비자) 입국 제도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정부는 그동안 중국 국적 여행객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놓고 고심해왔다. 자칫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중 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올 상반기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이 예정돼 있고, 정부는 이를 계기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켜켜이 쌓인 양국 갈등이 해소되길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교민 이송을 위한 전세기 투입 때처럼 입국 제한 조치 역시 한·중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최종 결정을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중 간 외교마찰 우려에 대해 “우한 교민 귀국 조치를 포함해 양국 간 소통이 잘 되고 있다”며 “외교 마찰이 있다고 하는 것은 좀 어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정책 실효성 논란
정부가 이날 전격적으로 후베이성 체류 외국인의 입국 금지 결정을 내린 데는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이 강해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국민청원 동의자 수는 이날 기준 65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다만 ‘중국 국적자'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 금지가 아닌, ‘후베이성 체류 외국인'으로 조건을 완화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일본과 말레이시아 등이 택한 일종의 타협책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한 폐렴의 진원지인 우한시는 이미 봉쇄 상태여서 이 지역을 겨냥한 대책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우한시가 속한 후베이성 지역에 머문 외국인(중국인 포함)이 다른 도시나 국가를 거쳐 국내로 입국하면 자진 신고 외에 이들을 100% 걸러낼 뾰족한 방법이 없다. 정부는 중국인의 경우 후베이성 발행 여권으로 체류 여부를 1차적으로 판단하고, 한국 입국비자 취득 시 후베이성 체류 여부를 적도록 할 방침이다. 하지만 허위 신고를 할 경우 이를 잡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의 다른 성(省) 주민이 후베이성 지역을 다녀오고도 이를 숨긴 채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료계 “중국발 입국 전면 중단해야”
의료계에서도 이번 조치가 우한 폐렴의 국내 확산을 막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후베이성 체류자만 입국을 중단시키는 제한적 대책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책 발표 시점도 늦었다”고 평가했다. 감염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된 중국 10개 성 체류자에 대해 입국을 금지하고 나머지 중국 다른 지역의 입국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사협회는 지난달 26일부터 “중국발 입국을 전면 중단시켜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최 회장은 “국민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정치·경제·외교 상황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세계 60여 개국, 중국인 입국제한 조치
우한 폐렴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중국인이나 중국에 체류했던 외국인의 입국에 제한을 두는 국가가 늘고 있다. 외신 집계에 따르면 이런 입국 제한을 두는 국가가 60개국을 넘었다.
미국은 지난달 31일 우한 폐렴과 관련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2일 오후 5시(미국 동부시간 기준)부터 최근 2주 사이 중국을 다녀온 외국 국적자의 입국을 잠정 금지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1일 0시부터 최근 14일 이내에 중국 후베이성에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원칙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후베이성이 발급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모든 중국인의 입국도 막혔다.
임락근/노경목/이정호/이지현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rklim@hankyung.com